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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쫓겨났던 이광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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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구속되기 전 ‘지역주민과 고마운 분들’ 앞으로 편지를 썼다. 그는 왜 개에게 쫓겨난 얘기를 했을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노무현처럼 내 인생도 가난이란 코드로 시작했다. 나는 번듯한 대학(연세대)에 들어갔고, 번듯한 직장을 얻을 수 있었지만 노동운동을 했다. 그리고 노무현이라는 소신파 정치인을 만났고, 보좌했으며, 함께 정권을 창출했다. 나는 권세(權勢) 대신 지역구를 택했다. 연탄을 나르고 야학을 하면서 열심히 했다.” 이광재는 ‘개에게 쫓겨날 정도로’ 가난했지만 돈에 끌려 다니진 않았고, 나름대로 소신 있게 살았다고 외치는 것 같다. 그는 직접 “여러분이 사랑했던 젊은이가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는 걸 밝히도록 하겠다”고 썼다.

박연차 사건에 걸려든 많은 이 가운데 나는 이광재를 주목한다. 우선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나 정권의 핵심 실세 중에서 현재까지 ‘노무현 브랜드’를 이어가는 대표 주자다. 민주당의 안희정 최고위원은 원외다. 서갑원 의원도 있지만 이 의원만큼 실세는 아니었다. 내가 이 의원을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너무도 절절하게 무죄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그는 ‘강원도민과 지역주민’에게 보내는 글에서 “여러분이 주신 ‘강원도의 힘’으로 결백을 밝히겠다”고 했다. 영장실질심사 직전인 25일 밤에는 두 개의 글을 썼다. 하나는 최후 진술인데 그는 “의원직을 사퇴해 보통사람의 신분으로 재판에 임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전직 보좌관이 일부 금품을 받은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앞에 인용한 편지다.

1차적으로 나는 검찰을 믿고 싶다. 검찰이 예뻐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검찰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뜻 검찰만을 믿기엔 이상한 과거가 있다. 민주당의 박주선 최고위원은 세 번 구속되고 기소됐는데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현대 뇌물 150억원’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재경부 고위 관료였던 변양호씨의 수뢰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모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인데 무죄가 된 것이다. 이 의원 자신도 그동안 특검을 포함해 여러 번 사법의 칼날을 받았지만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 받은 적은 없다. 물론 사건마다 진실이 다르므로 이번 사건을 과거와 연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의원이 하도 애절하게 무죄를 주장하므로, 그리고 무죄가 된 정치인 사건이 많으므로, 나는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광재의 진실게임은 매우 중요하다. 그가 무죄가 되면 노무현 정권은 마지막 숨통 하나를 챙기게 될지 모른다. 박연차의 회오리에 무너져 버린 노무현의 ‘도덕성 저택’에서 그래도 우리 사회는 추억의 앨범 몇 개를 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가 유죄가 되면, 세상은 철저히 노무현 정권을 버릴 것이다. 부패도 밉지만 죄 없는 개까지 끌어들였던 벼랑 끝의 위선이 더 가증스럽기 때문이다. 이광재는 자신의 공언대로 의원직을 버려야 한다. 당도 말려서는 안 되고 당이 말린다고 슬그머니 접어서도 안 된다. 공언대로 보통사람이 돼 재판정에 서야 한다. 만약 무죄가 되면 10월에 다시 출마하면 된다. 이번 사건에서 앞으로 어떤 거물급이 등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광재 피고인을 놓쳐선 안 된다. 그에게 걸린 진실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