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은 대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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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01면

병산서원 마당에 홍매와 청매가 꽃을 피웠다. 배리 버그돌·승효상 두 사람 뒤로 보이는 것이 만대루와 병산이다. 신동연 기자

아름다움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통했다. 병산서원 경내에 들어서자 이내 배리 버그돌(54·뉴욕 MoMA 건축·디자인 부문 수석 큐레이터)의 입에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와 건축가 승효상(57·이로재 대표)씨가 함께 떠난 1박2일 건축기행의 첫날 오후 늦게였다. 해가 져 버릴까 조바심을 내며 도착한 참이다. 긴 시간을 머물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으되 문 닫기 직전의 고즈넉함은 이 작은 공간에 충만한 음률을 만끽하기에 최적이었다.

뉴욕 MoMA 수석큐레이터 버그돌과 승효상의 1박2일 동행

버그돌은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청추예술사학회의 초청으로 한국 건축을 돌아보러 왔다. 25일까지 일주일간 머물렀다. 승씨와 보낸 1박2일은 그 일정의 중반부였다.

중앙SUNDAY는 이들의 1박2일에 동행했다. 안목 높은 두 사람이 건축을 매개로 나누는 대화를 듣고 싶어서였다. 두 사람과 각각 인터뷰도 했다. 이들에게 건축은 그 자체가 대화였다. 승효상씨는 땅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건축가는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의 지형은 물론이고, 거기서 사람들이 살아온 내력까지 건축에 배려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버그돌은 한국 건축의 특징으로 우선 안과 밖, 즉 실내 공간과 실외 공간의 대화를 꼽았다. “실내 공간을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고, 공간이 외부를 향해 열리도록 정제한다”고 말했다. “건물 여러 채를 지형에 맞춰 다층적으로 배치하는 것”도 한국 건축의 특징으로 꼽았다. 그가 둘러본 경북 영주 부석사나 안동 병산서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는 이런 특징을 전통건축만이 아니라 승효상씨의 현대건축에서도 발견했다. “내부를 잘게 나눠 바깥 공간과 끊임없이 대화를 만들어낸다”고 표현했다. 그는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모습을 두고 “24시간 돌아가는 초현대사회에 살면서도 전통을 의식하고, 강한 애착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건축을 자연과 인간, 공간과 공간이 나누는 대화로 바라봤다.

버그돌은 여기에 시간과의 대화를 더했다. “뛰어난 건축은 시간이라는 시험을 버텨낸다”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이 들고 나면서, 지어진 처음과는 좀 달리 쓰이더라도 뛰어난 건축적 개념은 처음 지은 지 10년, 15년 뒤에도 여전히 작용하는 걸 볼 수 있다”고 했다. 병산서원에서 목격한 장면 역시 그런 예가 아닐까 싶었다. 글을 읽던 유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건축적 아름다움이 말을 건넸다. 통역을 거칠 필요는 없었다. 서원이 이 자리에 처음 세워진 뒤 흐른 400여 년의 시간도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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