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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스포츠 관전, 해 보셨나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7호 34면

3년 전 LA 근교 애너하임에서 열린 WBC 2라운드 한·일전. 이종범의 결승타로 역전승을 거둔 그 경기. 나는 그 경기를 결코 잊을 수 없다. 현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했기 때문이다.

그 경기를 관람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신문사에서 국내의 노인병원 관계자 20여 명과 함께 LA 지역의 몇몇 노인병원과 양로시설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출발 며칠 전에 보니 WBC 기간과 완전히 겹쳐 있었던 것이다.

경기는 저녁에 열려 원래 일정을 조정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 장에 20달러짜리 한·일전 티켓을 사람 수만큼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멕시코나 미국과의 경기도 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일본과의 경기가 가장 흥미진진하니까.

미국에 도착한 다음 일행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대부분이 나의 독단적 결정(?)을 지지해 주었지만 몇몇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그 시간에 개인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결국 모두가 함께 가긴 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야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20여 명 중에서 절반쯤은 평생 단 한번도 운동 경기를 경기장에서 직접 본 경험이 없었다. 외국에서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두어 명밖에 없었고, 외국에서 우리나라 대표팀 경기를 응원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해외여행 경험이 제법 많은 분이었는데도 그랬다.

나는 해외에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한 경험이 꽤 많다.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는 반드시 그 지역에서 그때 열리는 스포츠 경기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가급적이면 경기장에 가기 때문이다.

축구는 영국·이탈리아·프랑스·네덜란드에서 본 적이 있고, 야구는 뉴욕 양키스의 홈경기와 지바 롯데 머린스의 홈경기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지바 야구장을 찾았던 날엔 이승엽 선수가 2루타를 치기도 했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현장에서도 여러 종목의 경기를 봤다(주요 언론사들이 결성한 대규모 응원단의 의무팀장으로 따라갔다).

내가 외국에 갈 때마다 스포츠 관람을 하는 건 스포츠에 미쳐서가 아니라 경기장에 가 보면 그 나라의 국민성이 너무도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축구장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경찰관과 소방관이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끊임없이 소리 지르고 불 지르고 싸움질하던 관중은 경기 종료 15분 전쯤 되니 하나 둘씩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좁아 교통정체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는데, 과연 성격 급한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프랑스 관중은 앞에 있는 의자를(그것도 빈 것만) 발로 차는 것 이상의 과격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일본 관중은 유니폼을 입고 줄지어 앉아 응원단장이 없는데도 너무나 일사불란한 응원을 한다. 선수마다 정해진 구호가 있고 정해진 노래도 있다. 영국의 축구 팬들은 너무도 진지하여 옆에서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올 정도이고, 미국의 야구 팬들은 경기 관람보다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하다가도 대선수가 나오면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네덜란드 축구장에선 10유로 단위의 선불카드를 사지 않으면 현금이 있어도 매점에서 간식을 살 수 없다. 줄도 짧아지고 수익에도 도움이 되는 귀여운 상술이다. 암스테르담의 어느 호텔 직원은 내가 아약스 팀의 모자를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숙박비를 깎아 주기도 했다.

다들 해외여행은 참 많이 하는데, 여행 체험을 물어보면 특별히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가이드북에 있는 내용만 확인하며 다니지 말고, 스포츠 경기 스케줄을 한번쯤 확인해 보면 어떨까. 사진보다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추억이 생길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외교나 비즈니스를 위해 현지인을 만날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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