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별일 없능교(없습니까)?”
요즘 이 지역 유력 인사들이 만나면 주고받는 인사다. 자고 나면 새 이름이 리스트에 추가되는 상황에서 서로의 ‘안녕’을 묻는 것이다. 특히 요 며칠 사이 정치인 외에 법원·검찰 및 경찰 간부와 국세청 관계자들의 금품 수수 의혹까지 불거지며 공무원 사회는 크게 술렁였다. ‘대규모 수사팀 파견설’까지 돌면서 긴장감은 더해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최근 대검 등에서 계좌추적 전문가 십 수 명을 내려 보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부산 쪽에서 일부 인력을 지원하긴 했지만 박 회장의 컴퓨터 방어막 해제 작업만 도왔다고 하더라. 주요 수사에서 이곳 사람들은 배제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요즘 이 지역 검·경 정보 라인 관계자들 간에 정보 공유를 위한 전화 통화가 부쩍 늘었다“며 “‘별거 없습니꺼, 있으면 얘기 좀 해 주이소’라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지만 말해줄 게 없어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역대 고위 간부의 전별금 의혹이 터진 이곳 경찰 쪽은 더욱 뒤숭숭했다. 한 경찰 간부는 “몇 년 전부터 부산·경남 경찰청장이 새로 부임하면 정보 라인에서 ‘주의 대상 1호가 박 회장’이라는 보고를 올렸다더라”며 “이런 얘기를 듣고도 부정한 돈을 받은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박 회장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접근하려는 간부가 있었다는 증언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지방의회 의원은 지역 정가 분위기를 “벌집 쑤신 듯하다”고 표현했다. “지난 10년간 이 지역에서 박 회장 돈을 안 받은 정치인이 없다는 소문까지 나돈다”며 “촌지 단위가 하도 커 겁이 나서 못 받았다는 사람도 있더라”고 전했다.
PK 지역에서 만난 인사들이 박 회장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최고급 위스키 ‘발렌타인 30년’이었다. 박 회장과 친분이 있다는 지역 기업인 A씨가 전하는 일화다. “몇 년 전 한 음식점에서 손님과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종업원이 발렌타인 30년산을 들고 왔다. ‘옆방에 오신 박 회장이 보내주셨다’고 했다. 평소 박 회장이 트렁크에 이 술을 가득 싣고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다.” A씨는 “그 뒤로 부산 특급호텔 일식집 등에서 ‘박연차’란 이름이 붙여져 키핑(보관) 중인 발렌타인 30년산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고도 했다.
부산=이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