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 유력자들 요즘 인사 “밤새 별일 없능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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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봄이 가장 빨리 찾아든다는 부산·경남(PK). 그러나 27일 이곳의 바람은 차가웠다. 꽃샘추위로 기온이 떨어진 탓이다. 하지만 이날의 바람은 지역 정·관가를 강타한 태풍에 비하면 미풍에 불과했다. ‘박연차(사진) 리스트’가 불러온 허리케인이 누구를 삼킬지 모르는 날이 이어지면서 PK 지역은 ‘봄 아닌 봄’을 맞고 있었다.

“밤새 별일 없능교(없습니까)?”

요즘 이 지역 유력 인사들이 만나면 주고받는 인사다. 자고 나면 새 이름이 리스트에 추가되는 상황에서 서로의 ‘안녕’을 묻는 것이다. 특히 요 며칠 사이 정치인 외에 법원·검찰 및 경찰 간부와 국세청 관계자들의 금품 수수 의혹까지 불거지며 공무원 사회는 크게 술렁였다. ‘대규모 수사팀 파견설’까지 돌면서 긴장감은 더해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최근 대검 등에서 계좌추적 전문가 십 수 명을 내려 보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부산 쪽에서 일부 인력을 지원하긴 했지만 박 회장의 컴퓨터 방어막 해제 작업만 도왔다고 하더라. 주요 수사에서 이곳 사람들은 배제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요즘 이 지역 검·경 정보 라인 관계자들 간에 정보 공유를 위한 전화 통화가 부쩍 늘었다“며 “‘별거 없습니꺼, 있으면 얘기 좀 해 주이소’라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지만 말해줄 게 없어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역대 고위 간부의 전별금 의혹이 터진 이곳 경찰 쪽은 더욱 뒤숭숭했다. 한 경찰 간부는 “몇 년 전부터 부산·경남 경찰청장이 새로 부임하면 정보 라인에서 ‘주의 대상 1호가 박 회장’이라는 보고를 올렸다더라”며 “이런 얘기를 듣고도 부정한 돈을 받은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박 회장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접근하려는 간부가 있었다는 증언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지방의회 의원은 지역 정가 분위기를 “벌집 쑤신 듯하다”고 표현했다. “지난 10년간 이 지역에서 박 회장 돈을 안 받은 정치인이 없다는 소문까지 나돈다”며 “촌지 단위가 하도 커 겁이 나서 못 받았다는 사람도 있더라”고 전했다.

PK 지역에서 만난 인사들이 박 회장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최고급 위스키 ‘발렌타인 30년’이었다. 박 회장과 친분이 있다는 지역 기업인 A씨가 전하는 일화다. “몇 년 전 한 음식점에서 손님과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종업원이 발렌타인 30년산을 들고 왔다. ‘옆방에 오신 박 회장이 보내주셨다’고 했다. 평소 박 회장이 트렁크에 이 술을 가득 싣고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다.” A씨는 “그 뒤로 부산 특급호텔 일식집 등에서 ‘박연차’란 이름이 붙여져 키핑(보관) 중인 발렌타인 30년산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고도 했다.

부산=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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