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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덫’에 걸린 여의도 … 다음 등장인물 누구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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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으로 ‘여의도’가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수한 사정(司正) 태풍을 견뎌온 정치권이지만 이번엔 예사롭지 않다고 여기는 듯하다. 여야의 차세대 정치 지도자들까지 거침없이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전격성’에 질린 모습이다. 부산·경남 정계, 386운동권이란 여야의 핵심 축마저 흔들린다. 정치권에선 “사정 당국에 의한 정치개혁 바람이 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내심 긴장하는 한나라
중심축 PK 흔들 … 미묘해지는 권력 구도
PK진영, 검찰 수사 주시 속“법적 문제 될 의원 없을 것”

“물을 빼다 보면 큰 고기도 있고 작은 고기도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27일 한 말이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을 “노무현 정부의 비리 저수지”라고 묘사하면서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 당에서도 관련된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출두해 해명할 수 있도록 요청하겠다”고 말 했다. 당내엔 그러나 홍 원내대표처럼 명료한 목소리를 내는 인사가 많지 않다. 아예 입을 다물거나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 거냐”고 묻는 사람이 대다수다. 박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정적 후원자로 알려진 탓에 처음엔 ‘수사가 구 여권을 향하는가’ 했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구속될 때만 해도 ‘구색 맞추기’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허태열(부산 북-강서을)·권경석(창원갑) 의원의 연루설이 나돌고 급기야 박진(서울 종로) 의원까지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기류가 확 달라졌다.


박 회장의 주 활동무대였던 부산·경남(PK) 정가는 특히 초긴장 상태다. 3선 이상 의원 대부분이 박 회장과 이리저리 얽혀 있다. 이들의 이름이 ‘박연차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상당수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주계로 분류된다. 여권의 한 인사는 “지금 검찰의 기세대로라면 PK 중진 중 누가 살아남는다고 자신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PK 진영은 1990년 3당 합당 이래 대구·경북(TK) 진영과 함께 한나라당의 양대 기둥이었다. 18대 국회 들어 수도권 세력이 급신장했다곤 하나 국정이나 의정 경험에서 PK·TK의 우위는 여전하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이런 PK가 흔들리고 있다.

PK 진영이 흔들리면 여권의 권력 지형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PK와 TK 간 세력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PK의 한 의원은 “박연차 리스트가 소문이 무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의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내우외환 휩싸인 민주당
친노 386 줄줄이 소환 …‘정세균 체제’ 삐걱
정동영 공천 논란 겹쳐
정 대표 “중대 국면 맞아”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 체제가 지난해 7월 출범 이래 최대 시련을 맞았다. 이광재 의원의 구속, 안희정 최고위원의 검찰 조사에 이어 서갑원 원내 수석부대표가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다. ‘정세균 체제’의 핵심기반인 친노세력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여기에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4·29 전주 덕진 재선거 공천 논란까지 겹쳤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의 격랑에 휘말려 있다.

민주당은 30, 31일로 예정된 의원 워크숍을 취소했다. 대신 소속의원 전원이 참여한 긴급총회를 열어 대책을 숙의키로 했다. 정 대표는 이번 수사를 야당의 위축을 노린 사정·공안 정국 조성으로 규정지었다. 4월 국회에서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투쟁하기로 했다. 정 대표는 27일 “제1야당으로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정권과 협력할지, 철저히 맞서 싸울지 확실히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앞길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우선 정 대표가 ▶손학규 전 대표·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칩거 중인 중진들의 조기 복귀 ▶동교동계 등 원로·중진세력과의 연대 등을 통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대표의 한 측근은 “이번 사태는 역설적으로 정 대표에게 기회”라며 “강경노선 일변도인 친노·386 세력에 밀려나 있던 중도세력 및 충청·호남권 의원들과 연대해 대중적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소수의 당권파를 중심으로 당을 운영해온 정 대표의 캐릭터상 기존의 노선을 고수할 것”이라 말했다. 그럴 경우 재·보선 결과를 놓고 민주연대나 구민주계 등 정 대표와 거리를 둬온 비당권파들의 반발이 향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덕진 공천을 둘러싼 정 대표와 정 전 장관의 갈등도 이번 사태로 격화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27일 정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며 전주로 떠나 다음주 초로 예정됐던 정 대표와의 재회동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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