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읽는다] 중국인 문화 유전자, 호탕 그리고 폐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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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큐를 위한 변명
이상수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404쪽, 1만6000원

 1999년 5월7일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에 미국 스텔스 폭격기가 발사한 미사일 세 발이 떨어졌다. 이 공격으로 신화통신사 기자와 광명일보 기자 부부가 숨졌다. 긴급 소집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장쩌민 당시 공산당 총서기는 “예로부터 두 나라가 싸울 때도 적국의 사신은 처형하지 않았다”며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나토가 우리 나라 대사관을 습격한 것은 국제적 배경에서 볼 때 결코 우연이 아니며, 결코 순진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개했다.

일간지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지은이는 당시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에서 중국공산당의 핵심 통치 코드를 읽어낸다. 당시 폭격으로 숨진 신화통신사 기자는 당내의 기밀 매체 ‘내부참고’에 기사를 쓰는 ‘내참 기자’였기에 중국 측의 분노는 컸다며 중국 언론의 또 다른 얼굴인 ‘내부참고(內部參考)’ 제도를 지적한다.

중국공산당은 공개된 신문·통신·라디오·텔레비전 외에 대내적으로 ‘내부참고’를 발행·배포하는 이중적인 언론제도를 운용한다. ‘내부참고’는 네 등급으로 나뉜다. 손으로 직접 작성돼 최고위 지도자 몇 명에게만 전달되는 ‘내참부혈(內參副頁)’은 최고기밀을 다룬다. 차관급 이상 고위 지도부에게 배포되는 ‘내참청양(內參淸樣)’은 절대기밀을 다루며 하루 1~2회 발행된다. ‘내부참고’는 중견 간부들에게 매주 2회 50쪽 이상의 분량으로 배포되며 비밀급 정보를 다룬다. 하급 간부들에게는 매주 1회 내부참고를 발췌·요약한 내참선편(內參選編)이 제공된다.

이는 서민에게는 언론을 통제하더라도 간부들까지 국내외 정세에 어두우면 당의 집권 능력과 통치 수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해서, 당 간부들 사이의 당내 정보 공유와 유통을 위해 만든 ‘언론’이다. “정권을 탈취할 때도 총자루(군대)와 붓자루(언론) 등 ‘두 가지 자루’에 의지해야 하지만, 정권을 공고히 할 때는 이 ‘두 가지 자루’에 더욱더 의지해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가르침에 충실한 제도다.

저자는 이처럼 내밀한 중국 문화와 거기 깃든 중국인의 기질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인에게는 두 가지 ‘문화유전자’ 가 있다.

벗 사귀기를 좋아하며 의리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호탕한 ‘대륙 기질’이 하나요, 루쉰(魯迅) 소설의 몽매한 주인공과 같은 ‘아큐 기질’이 또 다른 중국 유전자다.

저자는 중국인의 폐쇄적인 ‘아큐 기질’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천자(天子)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인재를 키워내던 ‘하오커(好客, 호객) 정신’에서 ‘아큐 기질’로의 전환을 진시황의 오른팔 이사(李斯)의 변신에서 찾는다. 이사가 빈객들을 축출하라는 논의에 간언한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린 BC 237년에서 천하를 통일한 뒤 분서갱유를 건의한 BC 213년이 중국 역사의 전환점이란 설명이다. 자신이 ‘아큐’이면서 수많은 ‘아큐’를 양산하던 황제는 제국의 통치공학을 완성했지만 그 폐쇄성에 갇혀 버렸다. 이 황제의 딜레마는 중국공산당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제자백가 이후 중국에 더 이상의 사상 창조는 없었고 해석만 존재했다’는 말이 있다. 주역과 제자백가의 논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 역시 중국이 진정한 ‘세계의 중원’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제자백가의 시절과 같은 개방성과 포용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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