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죽음의 문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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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만난 곳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늦은 오후 화요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였다. 루게릭병에 걸린 노교수 모리의 죽음을 그의 대학 제자인 미치 앨봄이 인간적인 시각에서 쓴 책이다.

작은 이 책이 내게 던져준 두 덩어리의 초점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과 스승이라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단어였다. 죽음이란 즐겁지 않은 주제 속에 가족·친구 또는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내용이 넘쳐났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살아있을 때는 쉽게 느끼지 못했던 것을 죽음의 교수대 위에 올라서서야 비로소 진실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친 노교수의 스승은 바로 ‘죽음’이라는 위대한 철학이었다. 근육이 점점 굳어져 가면서 끝내는 폐의 근육마저 마비되고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죽어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병이었기에 그는 그런 훌륭한 수업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모리는 가장 두려운 순간까지도 느껴봤으며 작은 변화와 감정들 모두 놓치지 않고 느끼려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의 모습을 보고 수많은 사람이 많은 변화를 느꼈고 진실해졌다. 제자는 “78세에 선생님은 어른으로서 나눠주고 아기로서 받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가르침과 배움이란 나눠주고 받는 것이다.

몇 년 전이었던가. 정신없이 골목길을 지나가다 지난 시절 스승님을 마주친 기억이 있다. 그 순간 선생님께서는 나를 알아보시고 짧은 인사말을 건네셨는데 난 그저 “어디서 뵌 분이겠지”라는 생각에서 성의 없이 지나쳤다. 그 많은 학생 중 날 기억해 준 스승과 내 학창시절의 1년을 지도해주신 단 한 분의 스승을 기억하지 못 했던 나. 그때 그분께 반갑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더라면 이렇게 그 날을 떠올리며 후회의 감정을 곱씹지는 않을 텐데. 혹시 미치 앨봄이 투병 중인 모리 교수를 우연히 TV프로에서 본 것처럼 언젠가 그 스승을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그분의 마른 두 손을 꼭 잡아드리리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지하철 승강장에 있는 몇몇의 글귀처럼 적어두고 싶은 대목이 많다. 그래서 내 책에는 접어둔 표시가 많다. 나를 접어두고 싶은 부분이 많은 사람으로, 그런 스승으로 제자로 만들어 주는 ‘마음의 묶음집’이라고 정의해본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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