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오르고 달러 공급 여유 생길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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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뉴스분석 미국의 구제금융 방식이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무차별적인 자금 지원에서 벗어나 구조조정을 동반한 선별 지원으로 돌아선 것이다. 23일(현지시간) 미 정부는 민간과 공동으로 1조 달러 규모의 민관 투자펀드(PPIP)를 조성해 부실 자산을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세계 증시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날 다우존스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6.84%와 6.76%씩 올랐다. 또 유럽과 중남미, 아시아 증시 등 대부분 증시가 달아올랐다. 지난달 미 정부가 금융시장안정화방안(FSP)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구체성이 떨어지는 데다 월가에 대한 압박 조치 등으로 인해 미 주가는 오히려 내렸다.

또 지난 18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000억 달러 규모의 국채 직매입 계획을 내놓았을 때도 반응은 떨떠름했다. 당시 다우지수 상승률은 1.28%에 그쳤다. 그러나 이날 나온 PPIP에 대해 월가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빌 그로스 회장은 “처음으로 모두가 ‘윈윈’하는 정책이 나와 열렬히 환영받을 것”이라며 “우리도 PPIP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 방안에 회의적이던 월가 인사들은 PPIP에 담겨 있는 당근에 크게 고무된 것으로 분석된다. 주이환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예전의 정책들은 당근은 없이 채찍만 있었던 반면 PPIP는 민간 투자자들에게 많은 유인책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PPIP는 민간이 내놓는 액수만큼을 정부가 내고, 이를 바탕으로 해 최대 6배까지 차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여기에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보증까지 한다. 또 부실자산 매각 방식도 확 바꿨다. 예전에는 부실자산이 있는 은행이 가격을 제시하도록 했으나 이번에는 경매에 참여한 매수자가 가격을 결정한다. 김세중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이번 정책은 부실자산뿐 아니라 부실자산을 기초로 해 만든 파생상품까지를 대상으로 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우리 금융시장에도 희소식이 됐다. 24일 원화 가치와 주가가 동반 상승했다. 특히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외국인은 3600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로써 최근 6일간 외국인은 모두 7800억원이 넘는 순매수를 기록했다.

FRB의 국채 직매입과 PPIP는 원화 가치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최대 1조 달러가 시장에 풀리면 달러 가치가 약해져 원화가 달러에 대해 강세를 보일 수 있다.

국내외 증시에 대한 PPIP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대세다. 달러 공급 확대로 인해 유동성 장세는 불러올 수 있지만 실물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선 상승폭이 한계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신영증권 김 연구위원은 “PPIP가 비록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는 힘에 부칠 수 있지만 하락세를 막는 데는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비록 돌발 사태가 빚어져도 주가지수 1100선은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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