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 네티즌의 창과 공산당의 방패가 다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1980~90년대 초 대한민국 대학가 학사주점에서 자주 불리던 대표적인 저항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야에서’의 가사다.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를 요구하던 젊은이들은 당시 이런 민중가요를 부르며 전의를 다졌고 그 결과 한국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1989년 6·4 천안문 사태로 중국의 민주화 운동은 좌절됐다. 그렇다고 중국에 저항가요도 없을까? 지난 1월 초 중국 인터넷에 ‘차오니마(草泥馬)의 노래’가 등장했다. 차오니마는 칠레 안데스 산맥에 사는 알파카를 뜻하지만 영어의 'Mother f**ker'를 뜻하는 중국어 욕과 발음이 같다. 뉴욕타임스와 중국 내 일반 신문들이 이 노래의 유행을 보도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다. 중국 판 민중가요이자 중국식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등장한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중국의 시정방침인 '조화(和諧)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황막하지만 아름다운 마러(고비 사막의 일부)지역에 한 무리 차오니마(草泥馬)가 살지요(在那荒芒美麗馬勒戈壁,有一群草泥馬)
그들은 활기차고 똑똑하며, 장난스럽고 영민하지요.(他們活潑又聰明,他們調皮又靈敏)
그들은 사막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고달픈 환경을 꿋꿋이 이겨냈답니다(他們自由自在生活在那草泥馬戈壁,他們頑勇敢克服艱苦環境).
민물 게(河蟹, 조화를 뜻하는 和諧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들이 나타났지만 차오니마는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그들을 무찔러, 민물 게들은 사라졌답니다(他們了臥草不被吃掉打敗了河蟹,河蟹從此消失草泥馬戈壁)”


▶유튜브에 올라온 '차오니마의 노래' 화면

지난해 말 중국에선 ‘황금방패’ 프로젝트가 완료돼 가동을 시작했다. ‘황금방패’는 인터넷 만리장성(Great Firewall)으로도 불리는 대규모 인터넷 검열 시스템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대규모 인터넷 음란물 단속으로 황금방패의 위력을 실감했다.
하지만 ‘손오공’이란 별명을 가진 3억 중국 네티즌의 여의봉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국 손오공들은 하늘 궁전(天宮)에 살지 않고 ‘산자이(山寨·원래 뜻은 도둑의 산채, 짝퉁 또는 가짜라는 뜻으로 쓰임)’에 거주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 손오공들은 일반적인 저항가요의 장중함은 버렸다. 대신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한 목소리를 딴 풍자 동요 ‘차오니마의 노래’를 만들었다. 완곡한 풍자 동요 ‘차오니마의 노래’는 치밀하기로 유명한 중국 당국의 인터넷 단속망을 교묘하게 피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노래는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24일 홍콩에서 발행되는 명보(明報)는 ‘중국 차오니마의 노래와 인터넷 검열’이란 기사에서 차오니마의 노래가 서슬 퍼런 중국 인터넷 검열을 시험대에 올렸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오전 7시29분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서 운영되는 인터넷 미디어 단웨이(Danwei)에 ‘인터넷 보모(Net Nanny)라는 아이디를 가진 블로거의 한 줄 속보가 떴다.

“유튜브가 중국에서 다시 폐쇄됐다.”

‘차오니마의 노래’에 인내하던 중국 당국도 풍자 강도가 더 높아진 ‘차오니마의 사랑(http://www.youtube.com/watch?v=IvT_w4ru_fo)’이란 제목의 속편이 나오고 국내외 언론의 보도가 계속되자 황금방패의 가동 버튼을 누른 것이다.

‘차오니마의 노래’는 1분24초의 짧은 노래다. 이에 비해 속편 ‘차오니마의 사랑’은 4분49초로 길어지고 내용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차오니마의 사랑’은 어린이 A와 B 두 명이 등장해 대화 식으로 부른다. 랩까지 가미됐다. 등장 동물도 늘었다. 바다에 사는 오징어 ‘파커여우(法克)’가 등장한다. 파커여우는 차오니마와 사랑에 빠진다. 둘 사이에서 애정의 결실로 2세가 태어난다. 그 이름은 ‘파커니마(法克泥馬)’. 노골적인 영어 욕을 중국어로 음차한 것이다.
대만에도 ‘차오니마’와 같은 뜻의 속된 욕을 음차한 ‘간링양(羚羊)’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러나 인터넷 검열이 심하지 않은 대만에서 이 노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황금방패로 무장한 중국 지도부는 인터넷을 이용해 민주화 욕구를 해소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특히 반부패 고발 부분에서는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차오니마의 노래’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지도부의 인터넷 정치 청사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중국에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이유극강(以柔克剛)’이란 말이 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는 노자(老子)의 말이다.
정리하자면 중국에서는 지금 통제의 틀을 뚫으려는 인터넷 네티즌의 창과 이를 막으려는 중국 당국의 방패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이 황금방패와 손오공들이 휘두르는 여의봉의 싸움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맺을 것인가에 대한 중국 바깥 세상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