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식품이 문화산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조민근 문화부 기자

지난 23일 문화관광부는 '한국 문화산업의 국제 경쟁력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거시적으로 미국 등 주요 6개국과 한국의 문화산업 경쟁력을 지수화해 비교하고, 미시적으로는 타임워너.월트디즈니.비벤디.소니 등 주요 글로벌 문화산업 기업과 국내 문화산업 기업인 CJ그룹의 경쟁력을 비교했다.

기업 간 비교에서 문화부는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평균 매출액이 320억여달러(약 38조4000억원)인데 비해 CJ그룹은 18억9200만달러(약 2조2700억원)로 격차가 17배에 이르고 순이익 격차는 19배, 종업원 수는 27배까지 난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일부 언론에 그대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는 엉뚱한 수치를 활용한 엉뚱한 분석이었다. 문화부가 CJ그룹의 매출액.순이익.종업원 수라고 밝힌 것은 사실 그룹 내 CJ주식회사(옛 제일제당)의 것이다. CJ주식회사는 식품.생활용품.제약 기업으로 여기서 올린 매출과 이익은 문화산업과 관계없다. 정작 문화산업을 맡는 기업은 CJ엔터테인먼트.CJ CGV.CJ케이블 등이지만 이들의 실적은 보고서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문화부가 발표한 것은 '글로벌 문화산업 기업과 국내 식품회사 간 비교'였던 셈이다.

당초 자료상 수치가 CJ그룹 전체를 합산한 것이라던 문화부 담당자는 재확인 요청을 받고서야 CJ주식회사의 수치라고 정정했다. 하지만 그는 "CJ주식회사는 식품회사지만 그룹의 모기업이고 거기서 번 돈이 문화산업에 투자되는 것"이라며 실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영화관에서 음식도 팔고 하니 식품도 넓게 보면 문화산업"이라고 강변했다.

이런 논리라면 앞으로 문화부 내에 식품산업과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애초에 탄생 배경이나 사업환경이 다른 기업들을 단순 비교하려 한 시도부터 무리가 아니었을까.

문화부는 최근 '문화산업 5대 강국'을 목표로 상당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초자료를 꼼꼼하고 정확하게 작성하는 자세다.

조민근 문화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