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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꿈, 행복을 찾아… 열정의 무대로 향하다

중앙일보

입력

“공연 꼭 보러오세요.” 17일 정동길에서 만난 최재하·정은채 씨는 서로의 도전의 대해 “대단하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나이 쉰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정은채 씨, 마흔에 뮤지컬 무대에 도전하는 최재하 씨.“용기가 대단하다.” “여유 부릴 시간이 있느냐”는 시선에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어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주부 정은채(50·고양시 중산동)씨는 지난 3개월 여 동안 시쳇말로 ‘머리에 털나고’ 처음 해본 일이 많다. 객석에서 올려다만 보던 리처드 용재 오닐의 지휘에 맞춰 합주를 했다. 남편(김중곤·51)·딸(자경·19)과 처음 떨어져 연주 캠프에 다녀왔다. 연주자로 무대에 서서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세종문화회관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세종나눔앙상블’의 단원이 되기 이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3년 전, 딸이 고등학생이 되고나니 더 이상 제 손이 갈 일이 없더라고요. 오로지 가족만 바라보며 살아왔는데, 그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내 인생을 찾자’고 다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이올린이었다. 여고 시절, 주변 여건상 접을 수 밖에 없었던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이 가슴 한켠에 늘 웅크리고 있었던것. 레슨비로 쓰라며 딸은 논술과외를 포기했다. 망설이는 그녀에게 남편은 ‘감사합니다’란 글을 쓴 레슨비 봉투를 내밀었다. 다시 바이올린을 잡은 그녀는 하루 10시간 넘게 연습을 했다. 행복했다. 우연히 접한 세종나눔앙상블 단원 모집 공고에 선뜻 지원한 것도 그런 에너지 덕분이었다. 10대 1이 넘는 오디션 경쟁을 뚫은 그녀는 지난달 첫 무대에 섰다. 다음달부터는 소외계층을 위한 연주회 무대에 오른다. 7월엔 오케스트라 창단공연도 예정돼 있다.

 “딸이 대학 졸업 후 사회인이 되면 단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싶어요. 마음 둘 곳 없는 가출청소년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도 싶고요. 요즘 자꾸 하고픈 일이 생기네요. 하하.”
 

불혹에 흔들렸다
 “7월말까지만 외도하겠다”는 최재하(40·웨스트에듀케이션 대표)씨의 말에 아내(한성희·38)는 “그동안 잘 참았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외국생활을 접고 귀국해 해외진학컨설팅 사업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5개월째. 사업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지난달 충무아트홀의 ‘제1회 도심 뮤지컬 캠프’에 도전장을 냈다. 이 캠프는 5개월간 발성·가창·연기·춤 등 뮤지컬 배우가 갖춰야 할 자질을 교육 받은 후 7월말 정식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프로그램이다. 작품은 ‘플로라’.국내 초연작이다.

 “안 해서 두고두고 아쉬워질 일이라면 해야죠. 진로상담을 할 때마다 제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얘기이기도 해요.”

 20여 년 전 대학전공(전자공학)을 정할 때, 졸업 후 직장을 고르거나 유학을 떠날 때, 그는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었다. ‘흘러가는대로 사는게 맞는 걸까’란 고민은 뒤늦게 찾아왔다.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것보다 사람들과 비비며 사는것이 내 일이구나’ 깨달았다. 재 하고 있는 해외진학컨설팅이나 뮤지컬 무대 도전은 그런 맥락에서의 선택이다.

 예상보다 지원자가 많아 갑자기 치르게 된 오디션을 위해 그는 여섯 살 딸 아이의 멜로디언을 꺼내 연주했다. 휴대폰에 지정곡(A Quiething-뮤지컬 ‘플로라’ 中)을 녹음해 하루종일 옆에 끼고 들었다. 오디션 전날엔 새벽 4시에 차를 몰고 집 근처 동산에 올라 차 안에서 맹연습을 했다. 최종합격자는 18명. 그는 최고령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제1 목표는 일주일에 2회(화·목 오후 8~10시) 진행되는 캠프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미리 잡혀있던 출장 계획도 캠프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조정했다.

 “회의가 길어져도, 가는 길이 막혀도 연습실만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나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행복해요.“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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