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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개성공단, ‘정경분리 원칙’ 분명히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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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처럼 북한이 스스로 당면한 안팎의 여러 문제를 염두에 두고 대외정책을 구사하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대북 정책을 바꾼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급반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대화 단절 국면이 답답하고 어렵다고 해도, 이전처럼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인내심을 가져야 하며, 도발에 대한 완벽한 대비태세를 갖춰 북한이 우리의 대북 정책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차분하게 기다리는 전술도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언제까지나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 원칙은 지키되 ‘운용의 묘’는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정부도 원칙은 견지하되 유연한 대처를 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제는 유연한 대처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때가 되었다. 특히 현 상황에서 운용의 묘가 절실한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개성공단사업이다.

개성공단은 남북화해 및 경제협력의 상징이자,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완충지대이기도 하다. 국민이 개성공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육로통행 차단조치’를 통해 우리 기업인을 사실상 억류하는 조치를 취하자 여론은 완전히 갈라졌다. 진보세력은 ‘비핵·개방·3000’ 폐기 목소리를 높였고, 보수세력은 아예 개성공단을 폐쇄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정부는 향후 개성공단사업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천명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함으로써 분열된 국론을 수습해야 한다.

만약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단할 경우,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카드를 쓸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은 공단을 폐쇄할 경우 개혁·개방 포기의 책임을 부담스럽게 보아 자신들이 먼저 중단하기보다는, 금강산관광처럼 우리 정부가 중단 결정을 내리도록 도발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이라는 개성공단의 의미가 살아 있는 한, 공단이 폐쇄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정부가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을 남북이 윈-윈하는 경제협력 모델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이 사업만은 우리가 끝까지 추진한다는 확신을 북한에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이번 ‘통행차단 사태’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개성공단에 한해 ‘정경분리 원칙’을 천명하고, 개성공단이 더욱 활성화되도록 개발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 방안은 지난 정부가 맺은 남북 총리급 회담의 합의문 중 개성공단 관련 내용을 실행에 옮길 장관급 회담을 제의하는 것이다. 산업단지 및 배후도시 조성, 기숙사 건설, 출퇴근 도로 건설, 통신센터 착공 등 2단계 개발 내용은 남북 간에 큰 견해차 없이 진척시킬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본다. 꽉 막힌 남북관계가 개성공단 문제를 통해 오히려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이범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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