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세고 여자 밝히는 ‘하드보일드 탐정’의 원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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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13면

강렬하다. 이 사내의 첫인상. 얼굴은 온통 V자다. 끝이 V자로 튀어나온 네모진 턱, V자 모양의 입, V자 형 콧잔등, 역시 V자 모양의 눈썹…. 웃으면 늑대 같은 인상으로 변한다. 블론드의 사탄이다.

남윤호 기자의 추리소설을 쏘다-샘 스페이드

대실 해밋의 『말타의 매』(1930)는 첫 장부터 독자에게 주인공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중세의 보물을 차지하기 위한 음모와 살인을 다룬 이 작품은 샘 스페이드를 하드보일드 탐정의 원조로 만들었다. 그가 나온 작품은 4편뿐이다. 장편은 『말타의 매』 하나다. 그런데도 스페이드의 존재감은 강렬하게 전해져 내려온다. 뒤에 나온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그를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었다.

그는 난폭하고 교활하며 능글맞다. 돈과 여자를 밝히고, 주먹도 잘 쓴다. 할 일이 뭔지를 알고, 효율적으로 해치우는 방법도 아는 수완가다. 고전탐정과 달리 사건을 해설하는 일은 제쳐 뒀다. 대신 사건에 뛰어들어 새로운 사건을 일으킨다. “내 방법은 기계에 무지막지한 스패너를 쿡 쑤셔 박아 아무렇게나 사정없이 돌리는 식이오. …옆에 있다가 기계 조각이 튀어 다치지 않게 조심하쇼.”

나름의 신념은 있다. 물론 거창하게 정의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동업자(마일즈 아처)가 살해됐으니 동료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근성에 가까운 신념이다. 사실 아처에 대한 연민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처가 살해된 다음 날 즉시 사무소 간판에서 아처의 이름을 지운다. 아처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묻는 의뢰인에게는 이런 답을 던진다.

“생명보험 1만 달러, 아이는 없소. 그리고 아내는 그를 싫어했소.” 스페이드는 아처의 아내와는 이미 불륜관계였다. 그래서 탐정인 주제에 살인 혐의를 뒤집어쓴다.
결정적일 때는 안면몰수다. 잠시 마음을 뒀던 여인 브리짓 오쇼네시를 살인 용의자로 경찰에 넘기면서 하는 말. “운이 좋으면 20년 뒤 샌퀜틴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겠군. 그때 내게 돌아오면 될 거요.”

스페이드는 할리우드 영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41년 존 휴스턴 감독의 ‘말타의 매’는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했지만, 험프리 보가트의 독특한 카리스마 덕에 성공했다. 이 영화로 ‘험프리 보가트=샘 스페이드’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 그 뒤 하드보일드는 영화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보가트는 42년 ‘카사블랑카’에서도 하드보일드한 남성상을 잘 보여 줬다. 이게 미국 남성에겐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 됐다. 냉철하고 남성적인 보기(보가트의 애칭)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소심남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심리를 묘사한 게 72년 우디 앨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Play it again, Sam)’이다. 그런데 일본에선 이게 ‘보기, 나도 사나이란 말이다’로 번역됐다. 촌철살인의 의역이다. 우디 앨런이 봤다면 ‘아이고, 형님’ 하지 않을까 싶다. 보가트가 체현한 하드보일드의 이미지는 그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다.


추리소설에 재미 붙인 지 꽤 됐다. 매니어는 아니다. 초보자들에게 그 맛을 보이려는 초보자다. 중앙일보 금융증권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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