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68.마당극(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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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5일 막을 내린 세계연극제 부문별 행사 가운데 '세계마당극큰잔치' 는 9월6~28일 경기도 과천에서 열렸다.

23일간 11개국 30개 단체가 참가한 이 행사의 결과는 '성공적 이었다' 는 게 중론이다.

행사 조직위원회가 집계한 최종 관객수는 총 17만9천91명. 세계연극제 전체관객 (총33만명) 중 절반이 넘는 수치다.

이 행사를 총지휘한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이하 민극협) 임진택 의장은 성공요인을 크게 두가지로 꼽았다.

그 첫째가 '마당 정신' 이다.

그는 "열린 마당에서 판을 벌이니까 의외로 몰렸다" 며 "우리나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연극성과 기대를 기성의 연극 풍토가 편협하게 해석했던 것 아니냐" 고 반문했다.

다음으로 그는 신명나는 '굿 정신' 의 재발견을 지적했다.

옛 마을축제의 현대화 개념으로 이같은 지역축제.도시축제를 열어 관객들에게 참여의 장을 열어주니까 자연스럽게 호응이 따랐다는 것이다.

이런 가시적인 결과로 그동안 침체 혹은 답보상태에 있던 국내 마당극 운동은 다시 한번 부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마당극과 관련된 학자와 평론가들의 지리한 '예술성 논쟁' 도 이제 한번쯤 재고돼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번 축제는 마당극도 나름대로의 예술미학과 원리가 뒷받침 된다면, 기성 연극보다 훨씬 다양하며 다채로운 관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았다.

이점에 대한 임씨의 견해. "지금까지 민극협 중심의 마당극은 그 정치적 색채와 경향성, 사회 참여적 성격때문에 주변의 강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는 내용 심의를 없애는 대신, 예술적 완성도 측면에서 일부를 걸러 내어 있는 그대로 작품을 내놓았다.

이처럼 열린마당에 흔쾌히 드러내니까 관객 (또는 출연자) 스스로의 경직성이 해소돼 좋은 반응을 얻게 됐다.

당대의 리얼리티를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것이 마당극 본연의 모습이었고 그런 작품에 호응도도 컸다.

" 이런 성과를 토대로 임씨를 주축으로 한 민극협은 마당극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밝혔다.

그동안 예술성 획득이라는 미명하에 마당극의 무대화가 활발히 논의 되었으나, 이제는 마당극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열린공간 (마당)에서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살 길' 이란 주장이다.

'이곳 저곳을 돌아나니며 자연속에서 친화하는 쪽으로 유통구조를 갖는 게 필요하다' 는 결론이다.

아무튼 이번 세계연극제로 마당극은 관객들의 직접 조명을 가장 많이 받은 결과를 낳았다.

때문에 이쯤에서 마당극의 탄생과 개념, 내용과 형식, 한계등을 짚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마당극' 은 지극히 한국적인 개념이다.

해외 연극에서 '거리극' (Street Theater) 혹은 '열린연극' (Open Air Theater) 이란 용어가 쓰이곤 있으나 '무대 밖에서 한다' 는 것 이외에 우리의 마당극과는 구별된다.

'열린연극' 보다는 '거리극' 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무대라는 닫힌 공간에서 하는 기성의 연극도 밖에서 공연 된다면 '열린 연극' 의 범주로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당극은 한국적 토양에서 자생한 연극형식이란 이유로 학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연구가 뒤따랐다.

현장인력끼리의 치밀하며 논리적인 의견수렴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던 것도 특징이다.

마당극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78년 서울대의 '허생전' 이라는 공연 팸플릿이라고 한다 (평론가 이영미)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당극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공식화한 것으로는 임진택씨가 80년에 쓴 이 분야 최초의 글 '새로운 연극을 위하여' 를 꼽는다.

이 글에서 임씨는 마당극을 '무대극' 의 반대개념으로 보고, "연희자와 관중이 한 덩어리이고 연희마당과 관중석이 서로 통하며 관중이 되는 연극" 이라고 정의했다.

마당극은 '열린 공간' 을 지향하는 점외에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여러가지 특성을 갖추며 이론적 틀거리를 갖춰 나갔다.

80년대초 임씨와 또 한사람의 마당극 이론가인 채희완씨는 "식민주의적 사관에 탈피한 시각으로 민족 고유의 전통민속연희를 그 정신과 내용, 형태면에서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오늘에 거듭나게 한 정치적 연극" 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이들은 미학의 범주를 '놀이정신' 과 '마당정신' 으로 설정하고, 마당극의 4가지 요소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이를 적시하면 관념이 아닌 현실적인 것이라는 '상황적 진실성' , 이런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다수의 놀이적 원동력인 '집단적 신명성' ,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며 즉발적인 상황에 대처하도록 하는 '현장적 운동성' , 공연의 반복에서 형성되는 '민중적 전형성' 등이다.

사실 마당극은 일찍이 60년대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탈춤.농악.민속등 전통예술 연구가 이뤄지던중 전문화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전통미학의 뛰어남을 발견하면서 양식화의 태동조짐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마당극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첫 작품으로 73년 서울대에서 열린 '진오귀굿' 을 든다.

80년 전후 공연과 이론화가 활발해 지면서 마당극은 마당굿 - 민족극이란 용어와 혼용.충돌하면서 공존했다.

그러나 상위개념인 민족극을 "창작탈춤.대동놀이.마당극.마당굿.진보적 리얼리즘극등 다소간 의미혼란을 야기시켰던 80년대 민중연희의 여러 갈래를 함께 아우르는 총체적 이념형" (채희완) 으로 이해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앞풀이 - 각 마당들 - 뒷풀이식의 '봉합식 구성' 을 갖춘 마당극은 하층 등장인물의 유형성, 구어체 방언.비속어의 사용, 재담, 해학과 풍자등이 특징이다.

이런 장치들은 공연중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서사극적인 기법과 상통하고 있다.

민주화이후 90년대 들어 마당극은 그 정치적 컬러때문에 침체의 길로 접어 들 수 밖에 없었다.

80년대 마당극의 무대화를 시도해 대단한 화제를 일으켰던 극단 연우무대나 아리랑등이 기성극계에 파고 들었으나 지금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냉정히 따져볼 일이다.

지금까지 마당극의 숙명은 '탈미학' 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다.

"생과 예술의 경계선을 지워버리며 연극을 단지 정치.사회적 수단이나 감정의 배설내지 치료수단, 혹은 오락적 장난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 (평론가 한상철) 는 일부의 질타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해서도 이번 세계마당극큰잔치의 결과를 토대로 관계자들의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게 됐다.

수용자 (관객) 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기 때문이다.

임씨는 "결과를 놓고 볼때 이번 세계연극제는 기성 연극계의 독창성 결핍을 노정했다" 며 "오히려 예술미학을 갖춘 마당극이야말로 세계성있는 상품임을 확인했다" 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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