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끼리 도란도란] 혼자 밥 먹는 게 어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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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밥 먹을 때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 밥 먹기를 꺼린다. 왜? 아마도 ‘나’ 보다 ‘우리’가 강조되는 집단주의적 사회 분위기가 대표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남을 혼자 먹게 내버려두면 ‘죄인’이 된다. 어느 출판사 편집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점심 약속 때문에 후배가 사무실을 비웠다. 홀로 남은 선배는 혼자 점심을 먹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또 다른 선배가 후배를 크게 나무랐다. 죄목은 ‘불경죄’.

혼자 식당을 찾아가 나 홀로 밥그릇을 대하고 있으면 분명 외롭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외로움을 ‘진짜’ 외로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 혼자 밥을 먹으면 ‘맛’과 ‘끼니’라는 식사의 목적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미식(美食) 차원의 거한 식사를 즐길 때는 재료의 선도, 셰프의 의도와 솜씨, 코스의 구성, 실내 분위기, 서비스, 와인과 음식의 조화 같은 요소들을 더욱 세밀히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셰프와 진지하게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도 한다. 혼자 밥 먹으면서 보는 신문이 더 집중이 잘 되고, 혼자 밥 먹으면서 바라보는 타인들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던가.

좋아하는 CD 몇 장 챙겨 혼자 여행 떠나듯,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식탁 앞에 홀로 앉아 밥 먹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이것도 요령만 익히면 꽤 즐길 만한 일이다.

① 크고 번듯한 식당을 찾자

분식집에서 대충 후딱 먹어 치울 생각을 버려라.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앉으면 누가 좋아할까. 이왕이면 매너 좋은 고급 식당이 좋다.

② 기사 식당이 최고다

달리는 시사평론가인 택시 기사들은 맛에 관해서도 달인이다. 또 기사님들은 대부분 혼자 먹는다.

③홀 테이블보다는 바에 앉자

누군가 마주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으니까 이상해 보이는 거다. 센스 있는 주방장이라면 서비스 음식과 대화를 청할 것이다.

④ 한식보다는 양식이 좋다

한식당에서는 으레 2인용 반찬을 준비한다. 혼자 시켜도 그러니 남기는 민망함이 발생하게 마련. 때로 ‘2인 이상 주문 가능’ 문구는 상처가 된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서양식 레스토랑이 싱글에게는 바람직하다.

⑤ 휴대전화 만지작거리지 마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그 시간에 신문이나 책을 읽어라. 생각하는 지식인인 양.

⑥ 단골 식당을 만들어라

일본 영화만 봐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대부분 단골집이다. 식당에서 주인장 눈치만 안 봐도 목 넘김이 훨씬 매끄러워진다.

⑦주인아주머니를 살펴라

나이가 많든 적든 이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끌리는 법. 물잔 놓는 손길부터 다르다.

⑧ 반주 욕심은 버려라

쓸쓸한 식탁을 위해 술을 시킬 거라면 생각을 바꿔라. 술 한 잔의 양만큼 무기력하고 늙어 보일 뿐이다.

⑨ 여성 고객이 많은 식당을 공략해라

여우를 잡으려면 여우 굴로 들어가야 한다. 또 아는가. 어느 고독한 여우가 혼자 밥을 먹다 당신과 눈이 마주칠지.

송원석 남성잡지 '루엘'기자 wet-ey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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