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를 찾아서]37.일본 가나자와에서…역사와 전통속 새로운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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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가나자와대학의 가모노(鴨野幸雄)교수는 지나가는 말처럼 웃으면서 내게 물었습니다.

“외과수술을 받고 병원침대에 누워서라도 삶을 연장하는 것이 좋은지,아니면 자택에서 식구들과 함께 조용히 임종을 맞는 것이 좋은지”를 물었습니다. 정년을 몇해 앞두고 있는 노교수의 개인적인 관심사 같은 질문이었지만 그 평범한 질문에는 가나자와시(金澤市)의 만만치 않은 철학이 담겨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자와는 인구 45만의 작은 지방도시에 지나지 않지만 작은 교토(京都)라고 불리는 고도(古都)이며 특히 문화도시로서 자부심을 갖는 고장입니다. 특히 가나자와대학을 중심으로 이미 이론적인 모델이 갖추어져 있는‘내발적(內發的)발전’이론의 본고장입니다. 내발적 발전이란 개념이 여러가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총합적인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한마디로 가모노교수의 질문이 그것을 함축하고 있듯이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도시의 경우에도 외부의 수혈을 받아야 하는 비자립적인 연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가나자와에서는 외부자본을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방도시들이 보여주고 있는 리조트 유치경쟁이 없습니다. 대기업의 지점이나 대리점 간판도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가나자와의 모든 회사는 소위‘본사회사(本社會社)’입니다. 이것이 가나자와의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이웃 도시인 도야마(富山)의 경우를 자주 예로 들고 있듯이 도야마는 도쿄의 돈을 끌어들여 급속한 성장을 추구하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외부자본이 빠져나가자 심각한 경제침체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그 동안의 성장정책이 남긴 환경파괴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그 유명한‘이다이 이다이병’을 앓아야 했습니다. 내발적 발전은 물론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긍극적으로는 경제보다는‘삶’을 지키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철학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자와경제동우회(金澤經濟同友會)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프로그램 역시 경제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문화프로그램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금속·인쇄·섬유·봉재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가나자와의 중소기업과 기술을 보존하여 모든 단계의 부가가치를 지역내에 귀속시키는 과제뿐만이 아니라 각 부문의 제조업과 유통,서비스부문을 긴밀히 연결시킴으로써‘연관산업의 집적(集積)’을 이루어내고 이러한 경제적 토대 위에 문화·교육·의료·복지를 포괄하는 공동체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의 집적이야말로 산업의 인큐베이터이며 그것이 곧‘삶의 질’이라는 높은 자각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가나자와에서 지나는 며칠동안 역설적이게도 가나자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자본주의를 읽게 되고 세계경제의 현주소를 읽게 됩니다. 도쿄가 전개하고 있는 일극집중(一極集中)과 수직적 분업체계를 선명하게 읽게 됩니다. 한가지 예로 일본이 그 속도와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신칸센(新幹線)은 지방을 동경에 예속시키는 벨트에 불과하다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일극집중구조가 우선은 급속한 경제성장에 효과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역의 이윤이 외부로 누출되는 파이프라인이며 결국은 지역경제를 무력화하고 자연과 인간을 황폐하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은 다이묘(大名)를 중심으로 하는 분권적 봉건제였고 그중에서도 가나자와는 가장 중세적인 도시였으며 당연히 근대화과정에서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고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자본주의가 지역경제를 무력화하고 이를 기업내 분업체계에 통합시켜가는 오늘날에 와서는 그 낙후성에서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국가를 단위로 하는 복지정책이 해체되는 WTO체제하에서 가나자와는 어느새 앞서서 걸어가고 있는 고장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엽서에 어울리지 않는 역사의 발전경로라는 추상적 개념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자연에 대하여 기울이고 있는 정성입니다. 도로확장 때문에 매몰되었던 수로(水路)가 단정히 복구되어 있었습니다. 수로에는 자동차 대신 맑은 물이 가득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시가와문(石川門)·겐로구엔(兼六園)·무사가옥(武士家屋)등 어느 것 하나 곱게 보존되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나는 일본의 명문고였던 제4고(第四高)의 교정에 세워진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시비(詩碑)를 발견하고 매우 놀랐습니다. 나는 그가 4고 졸업생이었던 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 ‘풍도(風濤)’에서 받은 감명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조차 몽고의 일본침략이 좌절된 것은 신(神風)의 도움 때문이라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음에 반하여 그는 대몽항쟁기의 그 모멸적인 상황을 인내해 가던 김방경(金方慶)장군의 고뇌를 통하여 고려 민중의 고난과 저항이 몽고의 일본정벌을 저지하였다는 입장을 그 소설에서 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가나자와의 문화가 그저 유미주의적인 범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근대성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일찍부터 키워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오늘날 가나자와의 내발적 발전의 싹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나자와는 다가오는 세계화 논리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지역의 자립성을 방어하고 인간적인 삶을 지키는 견고한 자위(自衛)의 진지(陣地)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어느 지방이 가나자와와 같은 진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도한 세계화 논리와 성장신화에 대하여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만큼 자기고장의 역사를 사랑하고 산천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고장이 어디인가 몹시 궁금해집니다.

가나자와가 추구하고 있는‘완만한 성장’과‘속도(速度)’에 대한 반성은 매우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완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가속(加速)은 결국 질주(疾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입니다. 일찌감치 합의해 두어야 하는 것은‘완만한 저하(pull-down)’에 대한 각오인지도 모릅니다. 가속(加速)보다는 감속(減速)의 경우가 관리하기에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차를 내리기 위해서는 어차피 속도를 줄여가지 않을 수 없는 법입니다.

가나자와에서 나는 골목을 걷다가 문득 문득 공자(孔子)의 뒷모습을 봅니다. 그리고‘달리는 수레에는 공자가 없다(奔車之上無仲尼)’는 경구를 생각합니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한개의 점(點)에 불과한 1m의 코스모스길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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