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강영훈 전 총리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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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는 추억을 안고 산다. 아름다운 추억, 아픔으로 되쏘는 추억, 결코 잊어서는 안될 추억…. 싫건 좋건 추억은 삶의 흔적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역동적 발판이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역사의 상흔 역시 마찬가지다.

보훈의 달인 6월 15일 늦은 저녁, 남양주에 있는 이미시문화서원 뜰에서는 평화의 계곡 한국전쟁 추념 문화단지 조성을 위한 모임이 있었다.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이름모를 비목이여'. 이름없는 무덤에 꽂힌 쓸쓸한 비목을 보고 비장하게 작사했던 한명희 교수를 중심으로 모인 문화계 인사 30여명은 6.25 체험 연배들이기에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였다.

서지문 교수와 성우들의 전쟁을 주제로 한 시 낭송, 성악가의 '비목'노래에 이어 회고담으로 이어졌다. 그중에도 평생을 군인으로, 외교관으로 지냈던 강영훈 전 총리는 곧은 자세로 시종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있다가 일어섰다. "얼마 전 학생들에게 6.25는 어떤 전쟁이었는지 물었더니 연합군 사이의 전쟁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이래 가지고서야 그때 피흘려 싸우고 아까운 젊음을 꺾은 희생자들의 영령 앞에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역사의 올바른 인식없이 지내는 요즘의 젊은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하다가 복받치는 감정에 끝내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다. 우리 모두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 고개를 떨구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철원평야 한가운데 아이스크림고지라 불리는 나직한 야산이 있다. 수없이 뺏기고 빼앗는 격렬한 전황 속에 산의 높이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치열한 그 전투, 그 포화에 산화했을 수많은 생명을 생각한다.

부산 피란지에서 당시 여고 1학년이던 나는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놓고 군복입은 청년이 일장연설 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젊은 학도들이여, 전선으로 나갑시다'. 남녀공학이던 사범학교에서였다. 그후 휴전이 되었어도 돌아오지 못한 남학생들이 적지 않게 있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전쟁은 참혹한 일이다. "이 세상엔 좋은 전쟁도 없고 나쁜 평화도 없다"(B 프랭클린)는 말을 곱씹어본다.

우리는 6.25의 민족적 참극을 겪은 나라이면서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 전쟁의 상흔과 교훈을 역사에 남기는 일에 너무 소홀했다. 현충일 행사조차 희미하게 퇴색해 가는 느낌이다. 아무리 급격한 변화의 시대라 하지만 과연 과거의 민족적 수난과 고통이 이처럼 무관심 속에 묻혀버린다면 정작 어떤 수난에 봉착했을 때 극복 의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는 결코 잊어서도 안 되고 잊혀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아픈 역사도 그 실상을 사실대로 전해주려는 것은 미래의 비전 창출을 위함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우리의 각오인 것이다.

남양주시의회가 '평화의 계곡'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 추념단지 12만평을 조성하기로 했다 한다. 한국전쟁 추념공원은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기념 구역의 조형물처럼 예술성 뛰어난 조각공원이 되고 전쟁박물관.평화의 탑.전쟁유물 야외전시장 등이 들어선다. 또한 참전 16개국의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문화원 기능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국군과 총부리를 서로 겨눴던 북한군과 중공군 희생자를 포함한 참가국별 희생자 명복을 비는 '화해의 비'건립도 계획되고 있다.

이 방대한 계획은 일개 시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범국민적으로 힘과 정성을 모아 뜻깊게 진행되어야 할 과제라 여겨진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역사를 외면하거나 무관심하게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진실되게 정리.해석하고 미래 속으로 투사함으로써 평화로운 발전적 진보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열망하고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후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