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집값 떨어지면 꼭 좋은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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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지난해 정부는 여러 차례 집값 안정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에선 집을 사고 팔기 어렵게 하고, 집을 팔아서 이득을 본 사람에겐 더 많은 세금을 물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꾸로 집값이 떨어져 경기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락가락 헷갈리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집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주택산업연구원이 최근 101개 건설회사를 상대로 조사했더니 64%가 연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집을 덜 짓겠다고 답했습니다.

정부가 투기를 막으려고 각종 대책을 내놓다 보니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거나 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설회사 입장에선 집을 살 사람이 별로 없는데 집을 무턱대고 지었다간 다 팔지 못해 빚만 질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순히 건설회사만 관련된 일이 아닙니다. 상품 하나를 만들 때는 최종적으로 완제품을 파는 회사뿐 아니라 여러 회사가 연관돼 있습니다.

건설업은 관련된 업체가 수백~수천개에 이릅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시멘트 회사, 철근 회사, 중장비 회사, 조명 회사, 페인트 회사 등 수많은 업체가 자재나 장비를 공급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형 건설회사는 전기 배선, 도색, 인테리어 등 부분별 공사를 각각 작은 건설회사에 맡깁니다. 그러니까 건설회사가 짓기로 했던 아파트를 안 지으면 수백개 업체의 수입이 줄어듭니다.

일자리도 감소합니다. 건설공사는 장기간에 걸쳐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경기가 아주 나빠지면 정부는 의도적으로 고속도로나 댐을 만드는 대형공사를 벌이기도 합니다. 건설공사가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는 데 효과가 빠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경기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데 건설경기가 매우 중요한 지표로 쓰입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주택건설은 1년 전보다 33% 줄었습니다. 수많은 업체의 수입이 그만큼 줄었겠죠. 게다가 4월 건설 수주(계약) 실적도 1년 전보다 15%가 줄었습니다. 아파트나 건물을 짓는 공사는 보통 1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수주 실적이 줄었다는 것은 1~2년 후에 건설경기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에서 집값의 급락을 걱정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사람들은 앞다퉈 집을 샀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은행에서 빚을 내 집을 샀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줄 때는 혹시 떼일 것에 대비해 집을 담보로 잡아둡니다. 빌려 준 돈의 액수도 담보를 팔아 은행이 챙길 수 있는 돈을 가늠한 뒤 적정한 수준에서 정합니다. 지금은 이 비율이 집값의 40% 정도지만 2002년에는 80%까지 대출해줬습니다. 1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8000만원을 빌릴 수 있었지요.

만약 집값이 20% 이상 떨어지면 은행은 담보로 잡은 집을 팔아도 원금을 회수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돈을 떼이는 은행이 생기고, 불안해진 은행들이 돈 줄을 죄면 과도하게 빚을 낸 사람들이 어려워집니다. 잘못하면 금융시장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집값이 무조건 올라야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집값이 너무 올라 서민들이 집을 사기 어려워지면 기업들이 임금을 더 줘야 하고, 그러면 생산비가 올라 세계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물가가 오르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이처럼 집값은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입니다. 분명한 것은 집값도 다른 상품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각종 정책을 써 일시적으로 집 값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져 건설회사들이 아파트를 안 짓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 공급이 달려 집값이 다시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꾸준히 공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정부는 집값을 억지로 잡기보다는 투기꾼들을 확실하게 단속하고, 집에서 남긴 이득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물리되, 중장기적으로 주택공급을 늘리는 데 주력하라는 것입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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