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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키아로스타미감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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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제2회 부산국제영화에서 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체리 향기' 를 선보인 이란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57)가 13일 오전 공동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이날 오후 부산호텔 스위트룸에서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만나 이란영화와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최근 자신을 포함, 이란영화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것에 대해 "79년 이란혁명 이후 미국영화가 수입금지되면서 이란감독들이 미국영화와의 경쟁없이 맘껏 영화를 만들 수있었고, 또한 섹스나 폭력을 금지하는 이란사회의 제한적인 상황이 오히려 감독들로 하여금 새로운 소재나 형식을 찾아나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 밝혔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영화의 산업적 측면을 떠나서 생각하면 영화예술에 대한 주목할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나무 사이로' 등 당신의 영화들을 보면 늘 일상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영화의 소재를 어떻게 찾고 발전시키는가.

"난 대학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배우지 않고 20대 때 이탈리아영화들을 보면서 영화를 배웠다.

네오리얼리즘영화의 거장인 자바티니감독은 "영화를 찍기 위해서 소설이나 이상한 곳에서 소재를 찾지 말아라. 길을 가다가 첫번째로 만나는 사람에게서도 훌륭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 고 말했다.

'내 친구의…' 는 나의 은사에 대한 기억과 어린 아들과의 대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이며 그에 이은 3부작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와 '올리브나무 사이로' 는 영화를 찍으면서 부닥친 사건들을 다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소설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주제를 택한 적이 없다. " 주제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고 말했는데 이는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올리브나무…' 나 '클로즈업' 등에서처럼 당신의 작품들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형식이 혼용되고 있다.

이런 형식을 택하는 특별한 의도가 있는가.

"관객들이 영화에서 얻는 즐거움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영화들에서처럼 '정말 영화같은 삶' 을 보면서 느끼는 환상적인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자신과 비슷한 등장인물을 보면서 느끼는 동질감의 즐거움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번째의 즐거움을 선호한다.

즉 영화의 스크린이 동떨어진 삶보다는 거울처럼 되어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올리브…' 에서처럼 배우를 선택하기 위한 과정 자체가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어떤 분장도 필요없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

난 영화를 다큐영화와 비슷하게 만들고 싶다.

4년전 이란의 TV에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가 방영된 다음날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나갔다.

옆에 있던 사람이 나를 가리키며 어제 영화의 감독이라고 하자 또다른 사람이 '그 영화에 감독이 있었단 말이냐' 고 반문했다.

너무 일상과 똑같아서 감독이 없는 영화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난 그의 말이 나의 영화에 대한 훌륭한 찬사라고 생각한다.

정말 훌륭한 감독은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 '체리 향기' 에서도 그렇고 당신은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시키기 보다는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 고 자각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면 "지금 들은 이야기는 진짜다" 라고 말씀하셨고, 슬픈 이야기면 "이건 다 가짜이야기"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체리향기' 는 어둡게 끝나기 때문에 마지막에 이것이 영화라고 말해주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브레히트는 '영화 속의 사건과 내가 거리를 유지해야 감정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 고 말했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한다.

사람은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이성을 잃을 수가 있는데 난 이런 점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감독에게 제일 쉬운 일이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인데 나는 이에 반대한다. "

(그래도 그는 현재 이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르는 멜로드라마라고 설명했다.)

- 그런 점에서 영화 속 영화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의도적인 것인가.

"첫 단편영화 '빵과 김' 에서 그런 시도를 처음 했는데 이전 영화와는 달리 독특한 영화형식이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영화를 찍은 것은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찍다보니 은연 중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 회교국가인 이란은 아직 서구나 우리에게 매우 다른 나라로 받아들여진다.

이란의 보통사람들의 삶이 어떤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라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화와 종교, 생김새 등이 모두 다르지만 삶의 근본문제는 하나다.

그런 외적인 요소의 차이 들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게 하나의 즐거움이며 예술의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

- '체리 향기' 는 소재의 선택이나 형식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다르다.

자살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선택했고, 어린 아이들도 등장하지 않으며,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형식상의 실험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란의 많은 후배감독들이 당신의 영화형식을 쫓아와 이란영화들이 비슷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결과인가.

" '체리향기' 는 죽음을 다룬 작품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삶을 예찬한 작품이다.

이는 '내 친구의 집은…' '올리브나무 사이로' 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시인 헤이욤은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끊임없이 나를 쫓아오고 있다고 생각하라' 고 말했다.

그리고 형식이나 소재의 변화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전의 틀에서 벗어난 점이 뿌듯하다. "

많은 후배감독들이 형식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문제다.

-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이란도 많은 갈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진짜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

"인생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도 내가 이란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예술은 그런 현실을 통해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부처는 "인생은 고해" 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살고 있다는 것은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고 이는 그래도 삶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낫기 때문이다.

나는 '체리향기' 에서 자살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키아로스타미는 황량한 이란의 자연풍광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여러가지 억압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의 본성 곧 자연에 어긋나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우리 속에 있는 자연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바깥에서 보이는 자연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부산 =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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