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굴리는 ‘생태도시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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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에게 자전거는 더 이상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니다. 교통 수단의 하나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생태도시의 수호자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생태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교통 수단 분담율을 줄이는 게 필수적인데 그 역할을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자전거다. 자출 2년차로 <바이시클 다이어리>의 저자인 정태일 씨(30)에게 생태도시를 꿈꾸는 ‘자전거 도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울 보라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

자출족이 늘면서 지자체도 도심 내 자전거길 확보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해 서울시는 새로 건설되는 뉴타운지구에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전거 도시로 잘 알려진 경북 상주시와 경남 창원시 뿐 아니라 각 지자체들은 자전거 도시 선포를 앞다투어 하고 있다. 얼마 전 부산과 울산 또한 자전거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부산시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건설하고 자전거 공영제를 도입하는 등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인프라를 구축해 자전거 수송 분담률을 5%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울산시 또한 바닷가를 일주하는 자전거 코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러한 각종 자전거 정책 발표로 조만간 자전거 출퇴근이 더 쉬워질 거라는 기대감이 감돌고 있다. 자전거 도로가 많아진다는 건 그 도시가 생태도시로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강 따라 달린 우리 동네 자전거 길

자출족 정태일 씨는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에서 경기도 안양시로 이어지는 35km 안양천 자전거 길을 두 바퀴로 달렸다. 안양천은 경기도 의왕시 백운자락에서 시작되는데, 안양시 도심을 통과해 광명과 서울시를 거쳐 한강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안양천 자전거 길은 바로 이 물길을 따라 이어져있다. 여의도에서 자전거로 출발해 성산대교를 1km쯤 지나면 안양천 합류지점이 나온다. 이곳 자전거 길은 해안도로를 달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물과 도로가 가깝게 붙어 있다. 여기서 핸들을 남서쪽으로 돌리면 안양천변으로 이어진다. 안양천 변을 달리는 한 자출족은 "서울에 있는 직장까지 차도가 아닌 강변도로를 달릴 수 있어 출근길이 더욱 기다려졌다"며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태일씨는 안양천 합류지점에서 백운저수지까지 2시간 가량 달려 도착했다. 그는 “유럽을 자전거로 달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또 몇 년 전에 비해 우리나라도 생태 자전거도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자전거는 생태도시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생태도시(ecocity)란 '사람과 자연이 조화되어 서로를 지키며 공생할 수 있는 순환체계를 갖춘 도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까지 환경을 파괴해 온 도시에서 벗어나 도시 기능을 확충하면서도 자연과 공생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새로운 녹색개념의 도시를 뜻하는 것이다. 생태도시를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하는 것은 교통순환체계다. 자전거는 바로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태도시는 ‘자전거 생태도시’와 일맥상통한다. 정태일씨는 “유럽에서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생태도시가 생겨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자전거를 예찬하는 게 단순히 낭만적인 감상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도로가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자출족들이 많아지고 흙냄새와 풀 향기도 살아나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생태도시로 알려진 독일의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덴마크의 스투르스템, 네덜란드의 델프트, 일본의 고베, 기타큐슈, 브라질의 꾸리찌바 등의 도시는 도로나 교통사정에 따라 자전거 도로가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생태도시는 자연과 문화, 교통과 첨단이 어우러진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자전거 길이 유럽도시의 자전거 도로에 비해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생태도시의 가능성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정씨는 “실제로 자전거로 이동하는 시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주말 한강변에는 자전거 나들이족이 가득하다”며 “바로 이게 그 증거가 아니겠냐”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벨리브 정책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파리의 도로. 자전거와 트램, 자동차 도로, 보행자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직딩이여, 자출하면 출퇴근이 즐거워진다

생태도시의 가능성은 자전거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10년 후, 아니 5년 후 도심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만나고 싶다면 자동차를 잠시 쉬게 하고 출퇴근길에 자전거를 타보자. 출근길에는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을 볼 수 있으며, 퇴근길에는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을 배경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낚시꾼들의 뒷모습을 만날 수 있다. 코끝으로 찐하게 들어오는 강바람이 제법 차지만 자전거를 탈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자. 안양천변을 달린 정태일씨는 “자전거가 그리는 생태도시의 가능성을 꿈꿔보았다”며 “한남동에서 올림픽공원까지 이어지는 자출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전거와 함께라면 여러분의 지겨운 출퇴근길이 한결행복해질 것이다. 생태도시를 꿈꾸는 직딩들이여, 자출을 즐겨보자”

tip 생태자전거도시=자전거를 ‘레저’가 아닌 ‘교통수단’으로 보고, 보행자나 자동차와 조화를 이루면서 이용할 수 있도록 도로환경을 정비한 도시를 말한다. 교통, 도로 상황에 맞게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 자동차가 교통수단으로 조화를 이루는 도시다.

사진제공/김해시청, 프리랜서 송소진>
글/장치선 워크홀릭 담당기자 charity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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