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시각장애인 컴퓨터강사 김병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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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시각장애인 김병호 (金炳鎬.31.사진) 씨의 명함을 받아본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눈을 의심한다.

명함에 적힌 그의 직책은 컴퓨터강사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자를 컴퓨터가 읽어서 음성으로 들려주는 문자인식프로그램덕분에 생각보다 가르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진 않아요. 교육을 받는 시각장애인들도 같은 시각장애인 강사가 가르치니까 더 열심히 합니다.

" 그는 중앙개발이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운영중인 '시각장애인무료컴퓨터교실' 에서 컴퓨터강사로 일하고 있다.

주 4회, 회당 3시간씩 강의를 한다.

대우는 대리급. 그가 가르치는 내용은 PC기초 부터 워드프로세서.PC통신 등으로 다른 컴퓨터교실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앞 못보는 시각장애인들이기 때문에 운영체제 (OS) 로 시각위주의 윈도 대신에 문자위주의 도스 (DOS) 를 쓴다.

"PC교육은 시각장애인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PC통신을 통해 뉴스나 경제소식등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요. 공개대화방에 들어가 친구도 사귑니다.

사이버공간에선 장애인이라고 주눅들 필요도 없고요. " 金씨는 한창 나이에 시력을 잃었다.

93년 7월 그는 시력에 치명적인 포도막염에 걸렸다.

경북 구미시 구미전자공고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 구미공장 무선사업부에 입사해 근무 10년째로 접어들고 대리로 승진한지 3개월이 지난 때였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실의에 빠졌던 金씨는 하지만 곧 자신을 추스렸다.

실명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이미 아내와 두 명의 자녀를 거느린 가장이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한국시각장애인복지회에서 실시하는 재활교육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정보습득에 고통받는 것을 목격하고 시각장애인에게 컴퓨터강사로 나서겠다고 결심했다.

金씨는 삼성전자에 이같은 생각을 제안했고 회사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회사측은 그를 위해 용인 맹인안내견학교 내에 컴퓨터교실을 만들어주고 그에게도 충직한 안내견 구슬이를 분양해주었다.

그는 요즘 직장뿐 아니라 집에서도 살 맛이 난다.

집에서 7살짜리 아들 창기에게 PC를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하기 편리한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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