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신영철 대법관 … 명예회복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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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이 원장은 전날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시위 재판 개입’ 의혹 사건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넘기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신영철(55) 대법관은 17일 하루 종일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 “촛불사건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발표에 대해선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신 대법관의 거취표명 여부와 관련해 “현재로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신 대법관이 거취를 표명했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신 대법관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전날의 전망과는 달리 “불명예 퇴진은 안 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신 대법관이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고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대법관은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재판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게 평소 소신”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소신대로 한 행동 때문에 대법관 자리를 내놓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신 대법관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시각도 있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신 대법관과 이 대법원장 사이에 갈등 기류가 형성됐다는 분석에서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장의 방침에 따랐다고 생각했던 신 대법관이 조사를 받으면서 본인에게 오명이 씌워진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신 대법관의 사퇴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점도 그의 거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나라당은 “신 대법관의 행동은 단순한 주의 환기 차원의 사법 행정으로, 재판 개입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신 대법관의 사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법관은 헌법상의 신분 보장을 받기 때문에 탄핵이나 징역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면되지 않는다.

대법원 윤리위원회는 구두 경고나 징계위 회부 등의 결정만 할 수 있다. 징계위원회가 할 수 있는 징계도 견책·감봉·정직의 세 종류뿐이다. 또 국회가 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해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편 김용담 대법원 진상조사단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부 판사가 신 대법관 e-메일을 언론에 유출한 것은) 또 다른 재판권 독립 침해 사례여서 그 부분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논란은) 재판 독립을 침해받은 사람이 직접 제기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제기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아이러니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승현·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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