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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논조]김정일 체제 한반도 통일에 별 도움 안될 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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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은 최근 국제컨소시엄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가 추진중인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중단시킨 바 있다. 함경남도 금호지구내 원자로 건설작업장내에서 '북한의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金正日) 의 사진이 게재된 노동신문이 찢겨진 채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이 한국측 근로자들의 현장 출입을 막는 등 공사중단 조치를 취했다.

북한에서는 신문에 실린 김정일의 얼굴사진을 구기는 행위조차 지도자의 신성 (神聖) 을 모독하는 것으로 취급되는데 하물며 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불경스런' 일을 벌인 때문이다. 개인숭배가 이처럼 일상화된 나라에서 지난주 김정일의 노동당 총비서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동시에 거리로 뛰쳐나와 광적인 축하행사를 한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외부와 고립된 채 이상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북한을 바라보며 미 국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천만 북한 주민들을 돕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 가책과 함께 일종의 경이감 또는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마지막 남은 스탈린식 독재체제에 살고 있다. 비록 지난주 쿠바의 공산당대회에서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7시간에 걸친 연설을 하는 것을 바라보며 적어도 북한에 버금가는 경쟁자가 하나는 더 있다는 생각도 하지만 말이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바로 이웃한 같은 민족 한국과도 단절돼 있다. 그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선전선동 뿐이며 수많은 주민들은 계속되는 흉작과 지난 50년간의 경제실패로 굶주리며 죽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1백만명의 호전적인 군사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주한미군에 군사적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또 굶주림과 경제적 붕괴, 정치적 불안정, 군사적 오판 등으로 인해 전쟁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김정일이 노동당 총비서직을 승계하고 권력의 전면에 나선 것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거리 이상이다. 이제 김정일은 총비서로 북한 정권의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며 평양 관측통들은 그가 곧 국가주석직도 승계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공산사회 국가 사상 처음으로 부자세습의 왕조가 이뤄진 것이다.

한.미 정부 관계자들은 총비서 김정일이 지금까지보다 우호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기대하지만 그의 언행을 보아 그런 기대가 충족될 징후는 전혀 없다.

더욱이 굶주림에 지친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을 광적으로 축하하는 모습은 한반도가 통일되기까지 무척이나 어려운 과정을 밟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워싱턴 포스트= 본사특약 ·정리 =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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