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감동에 목마른 중·장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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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기 엄마가 된 이후 노래로 나를 처음 울렸던 사람은 에릭 클랩턴이다.

지난 91년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맨해튼의 고층아파트에서 실족사한 네살배기 아들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부른 '천국의 눈물 (Tears in Heaven)' 을 출근길 라디오에서 처음 들으면서 그 상실감과 절절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 9일 클랩턴의 내한공연이 열리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이끌린 것은 바로 이런 진한 교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클랩턴이 멋진 기타솜씨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블루스의 리듬을 연주한 이날 공연장에는 정말로 보기 드물게 30~40대의 중.장년층 관객이 주력부대를 이룬 듯했다.

열광하는 10대의 요란한 외침이 없는 '점잖은' 관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진정으로 공연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52세의 클랩턴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이나 유행과는 상관없이 서양 대중음악의 뿌리인 블루스로 사람들의 마음과 직접 소통해온 원숙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의 대중문화는 너무나 오랫동안 신세대 취향 맞추기에만 매달려 있다.

TV의 쇼프로들은 댄스곡 위주의 노래와 춤으로 채워지고 있고, 코미디프로 또한 지적인 풍자정신이 결여된 말장난으로 아이들 사이에 이상한 유행어 낳기 경쟁을 하고 있다.

10대들의 호주머니가 대중문화의 시장을 좌우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이러한 천박한 상업성은 소위 '성인문화' 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즘 '연소자 관람불가' 의 한국영화들은 성 (性) 을 성숙한 삶의 한 부분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성적 호기심만 부추기는 벗기기 경쟁에 치우쳐 우리 문화를 집단적인 사춘기 증후군으로 몰아가고 있다.

10대의 분출하는 에너지는 변화를 모색하는 힘은 있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은근한 끈기와 원숙함을 지닌 성인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회는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른들마저 모두 사춘기적인 감수성에만 머무르려 한다면 성숙한 문화는 절대로 뿌리내릴 수 없다.

지금까지는 문화에 대한 성인층의 관심부족이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클랩턴의 공연에 몰린 중.장년층의 열성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호소력인 것이다.

가끔은 TV에서, 공연장에서, 그리고 극장에서 성숙한 삶의 감동을 만나고 싶다.

이남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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