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국, FTA 비준해야 미국도 움직여 … 여야 내달 꼭 처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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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사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을 거론하는 것은 협약을 붕괴시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3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을 미국에서도 잘 알고 있기에 함부로 재협상 이야기를 꺼내긴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정치권에 대해서도 “자꾸 무슨 옵션이나 되는 것처럼 (우리가) 기다려 보자고 주장하는 것은 굉장히 좋지 않은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한·유럽연합(EU) FTA는 23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8차 협상에서 마무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8차 협상에서 다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주 직접 유럽으로 가 4월 초까지는 타결 짓겠다고 강조했다.

만난 사람 = 고현곤 경제정책 데스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 조금씩 뜯어고칠 바에야 차라리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낫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재협상은 FTA 협정을 깨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배수진을 쳤다.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에서 덜 팔리는 것을 두고, 미국 일각에서 자동차 협상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사회주의에서 계획경제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본부장과의 인터뷰는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론 커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의 발언이 “한·미 FTA를 받아들일 수 없다” “전반적으로 지지한다”라는 식으로 오락가락한다.

“그의 의회 서면 답변을 보면 한·미 FTA를 진전시키기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어젠다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미 FTA는 언제쯤 진전이 있을까.

“아직 미국의 통상정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안달복달하는 것보다 상대편에게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 상대가 준비가 안 됐는데 섣부르게 하면 오히려 비생산적일 수 있다.”

- FTA와 관련해 오바마 정부와 접촉이 있었나.

“공식·비공식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있을 거다. 하지만 워낙 경제가 어려우니까 경기부양책이 먼저고, 통상정책은 조금 시간을 갖고 보자는 분위기인 것 같다.”

-국내 정치권에선 우리가 먼저 비준하면 미국에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의견과 그러면 국익을 해친다는 의견이 맞서는데.

“우리가 먼저 비준하면 상대편 절차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야당 일각에서 미국에서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하는데 그것은 상황을 꼬이게 만드는 거다. 이미 타결된 지 1년 반 지났고 내용은 뜯어볼 만큼 뜯어봤다. 여야 합의대로 4월 중에 꼭 처리하고, 이어 미국 측이 비준하는 게 순리다.”

- 미국이 재협상이나 추가 협상을 요구한다면.

“이런 경우를 가정해 설명하기 싫은데, (잠시 뜸을 들인 뒤)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낫지 조금씩 뜯어고치는 것은 더 어렵다. 미국 일각에서도 재협상은 바로 협약을 붕괴시키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재협상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자동차 협상이 불공정했다는 미국 주장은. 

“그동안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에서 연간 70만 대 팔리는 데 비해 미국산 차는 한국에서 5000대밖에 팔리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미국에서 자주 나왔다. 그러나 교역에서 숫자를 맞추자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상대편에서 어떻게 여길지 몰라도 사회주의에서 계획경제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발상이다. 그나마 숫자도 틀렸다. 70만 대엔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판매된 수량이 포함된 반면 국내 GM대우차에서 만드는 숫자는 5000대에서 빠져있다.” 

-지난해 쇠고기 추가협상을 전례로 들며 추가협상을 요구해올 가능성은. 

“쇠고기와는 다르다. 쇠고기는 과학적으로 국제 기준이 있고, 이를 맞추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미 FTA는 서로간의 이익이 균형이 되느냐를 따져서 타결한 것이다. 자동차 협상에서 우리가 다소 이익이 있다 해서 마냥 유리한 것은 아니다. 농산물·서비스 등은 우리가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나. 저쪽에서 자꾸 비관세 장벽을 이야기하는데, 국내 시장에서 다른 외국산 차는 잘 팔리고 있다.” 

-30개월령 미만으로 돼 있는 쇠고기 수입 규정을 풀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객관적으로 우리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긴 이르다. 현재로선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

-한·유럽연합(EU) FTA는 이번 23~24일 협상에서 타결되나. 

“타결될 수 있다. EU도 이번 협상에서 마무리 지을 생각을 갖고 있다. 남은 쟁점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만약 마찰이 생기면 다음주 직접 유럽으로 가서 4월 초까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관세환급이 가장 큰 쟁점이다.”

-최근 외신들이 한국경제를 불안하게 보는 기사를 많이 싣고 있다.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부단하게 접촉해야 할 것 같다. 올 들어 외신 특파원 50명 중 절반을 1대1로 점심시간에 만났다. 외교부 차원에선 런던·뉴욕·홍콩 등의 거시경제 쪽에 전문성 있는 언론과 부단하게 접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달 초 G20 정상회의의 이슈는.

“보호주의를 막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세계무역기구(WTO)가 보호주의 움직임이 두드러진 국가를 정리하는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 이달 중 보고서가 나온다. 이를 펼쳐놓고 G20 정상들이 논의하면 상당한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중국·일본과의 FTA는 어떻게 진행되나.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하는 여론도 있습니다. FTA가 추진되려면 ‘이게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식의 지지 요인이 받쳐줘야 한다. 일본과의 FTA는 이것이 부족하다. 중국과는 공동연구를 하고 있으니 이 게 마무리되면 서로 예민한 부분을 어떻게 할지 검토해야 한다.”

글=이상렬·김필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김종훈(57) 통상교섭본부장=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14개월 동안 한국 측 수석대표로 진두 지휘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2007년 8월 장관급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외무고시 8회로 1974년 외무부에 들어간 뒤 주미 한국대사관 경제참사관, 외무부 국제경제심의관, 지역통상국장 등을 지낸 통상 전문가다. 한·미 FTA 협상에 이어 지난해 봄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까지 여러 난제를 무리 없이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된 장관급 인사 가운데 현 정부에서 유일하게 유임됐다. 윈드서핑·패러글라이딩·카이트보딩 등 익스트림 스포츠 매니어이기도 하다. 간혹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 드러난 매서운 눈매는 ‘검투사’란 그의 별명을 떠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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