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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철군을 안심해도 좋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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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오바마 정부가 19개월 후인 내년 8월 말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2003~2007년처럼 이라크에서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걱정이다. 미군 없이도 이라크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미군 2만 명을 추가 파병하고,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사령관이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전략을 공격적으로 바꾼 것이 큰 역할을 한 것 외에도 다른 두 가지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첫째,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가 시아파가 지배하는 도시로 바뀌었다. 정확한 통계수치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2003년엔 바그다드 주민의 35%가량이 수니파였다. 반면 현재는 수니파 주민이 10~15%뿐이다. 이는 100만~150만 명의 수니파가 바그다드를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대부분 요르단과 시리아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라크의 새로운 시아파 엘리트들은 이들이 고국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2006년 바그다드에서 자행된 인종 청소 이후 수니파 반군들이 군중 속에 섞여 살아가기 힘들게 됐고, 병참 및 경제 지원도 끊겼다. 그 결과 시아파 정부는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주변 수니파 국가들이 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 정부를 인정하고 부분적으로 지지하게 된 것이다. 이라크에 시아파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겁내며 미군 주둔을 반대했던 2003~2005년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2003~2004년 외국에서 흘러 들어온 자금과 무기, 병력이 이라크에서 수차례 폭동이 일어나도록 부추겼다. 시리아·요르단과 맞닿은 허술한 국경을 넘어 아랍 세계 곳곳에서 자살폭탄범들이 이라크로 건너왔다. 주변국들은 드러내놓고 폭동을 지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국 내 이슬람 무장세력을 단속하지도 않았다.

변화가 시작된 건 2005년 11월부터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요르단 수도 암만의 호텔 세 곳을 공격해 60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라크 주변 국가들은 이라크에서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는 폭력 사태가 조만간 국경을 건너 자기네 나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요르단 정보부는 이라크 정부가 알카에다 조직을 추적하는 걸 돕기 시작했다.

이란도 달라졌다. 이란은 이라크 내에서 다면적인 전략을 펴왔다.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무마흐디 아미’ 같은 급진 시아파 무장세력을 후원하는 한편 시아파가 주도하는 연립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리키 총리가 바스라에서 반군세력 소탕 작전을 편 이후 이란은 양다리 전략을 접기로 한 것 같다. 당시 이란은 이라크 정부에 유리하도록 정전 협상을 중재했다.

요컨대 시아파가 바그다드를 장악한 것, 그리고 주변국들이 이라크의 새 정부를 인정하고 지지하게 된 것 이 두 가지 요소가 이라크 안정에 큰 역할을 해냈다. 따라서 미군이 철수한다 해도 이라크가 폭력으로 얼룩지진 않을 것이다.

로웰 슈바르츠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원
정리=김한별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