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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e-메일 조사 결과, 사법개혁 계기 되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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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재판 판사들에게 보낸 e-메일 파동에 대해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어제 ‘재판 관여 소지가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엄정한 진상규명을 촉구해온 우리는 조사단이 발표한 조사내용과 판단은 믿고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사결과를 신뢰할 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절차 측면에서 조사단이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문제를 거의 대부분 당사자들과의 직접 면담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신 대법관의 e-메일은 물론 이를 전후한 전화통화와 회의내용, 그리고 사건배당 과정과 영장기각 사유에 대한 의혹 등이 모두 조사결과에 포함됐다.

둘째, 내용 측면에서 조사단의 결론이 매우 엄격하다는 점이다. 해당 판사들에 대한 조사 결과 일부 판사는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신 대법관의 메일과 전화 등이) 사법행정권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e-메일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만한 사례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간 사법부의 관행이나 분위기로 봐 신 대법관의 태도는 ‘(재판의 독립이란 점에서) 부적절하지만, (사법행정이란 측면에서) 그럴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단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신 대법관의) 일련의 행위가 재판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법원의 보수적 관행으로 미루어 예상됐던 이상으로 엄중하다. 판사들로만 구성된 조사단을 두고 ‘제 식구 감싸기’ 가능성을 제기했던 일부의 우려를 씻어낸 결단이라 평가된다.

남은 과제는 이번 파동으로 손상된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후속 조치들이다. 먼저 법원은 이번 파동의 전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부 판사들이 외부 언론에 내부 자료를 유출하는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과정은 비정상적이다. 독립적이어야 할 판사가 스스로 외부의 간섭을 불러들이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다. 판사 개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제도적 치유가 시급하다. 법원이 독립성을 지키려면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갖춰야 한다. 사법부의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인사와 관련된 평정방식을 개선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으로 당사자인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다. 신 대법관은 “법원장으로서 할 일을 했다”는 입장이었으며 법조계 다수 시니어층에서는 그에 동조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결국 법원장의 권한, 즉 사법행정의 범위를 놓고 세대간 인식차가 큰 데서 표출된 사안일 수 있다. 그러나 대법관이 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사건이다. 신 대법관 스스로 사법부 발전을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원 외부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번 파동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 각종 사회단체 등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드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제 믿을 만한 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그에 따른 사법부의 자기혁신 노력을 기대하며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