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날개]이나미씨 가죽 점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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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평생 일 밖에 몰랐던, 그렇게 성실하고 묵묵히 일하는 당신의 모습으로 가르침과 꾸지람을 대신하셨던 아버지. 빈 말로라도 "예쁘다" 고 하지 않고 "널 믿는다" 는 말로 어렵사리 사랑을 표현하던 아버지. 정신과 의사로, 수필가로, 칼럼니스트로 '세상 읽기' 에 분주한 이나미씨 (37) .수많은 이들의 인생살이가 밀려왔다 사라지는 그의 가슴속엔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아버지의 자리' 가 있다.

무역업.항만업에 손을 댄 탓에 숱한 날들을 떨어져 살 수 밖에 없었지만, 지난 2월 작고 당시까지 큰 딸인 이씨에게 변함없는 버팀목이 돼주었던 아버지 (고 이정원씨)에 대한 기억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선 저에게 다 자란 어른 대접을 해주셨어요.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 며 모든 걸 믿고 맡기셨죠. 의대 공부를 할 때도,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이씨는 88년 단편소설 '물의 혼' 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아버지의 말없는 격려가 저에게 커다란 힘이 됐습니다.

" 어찌 보면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도 모처럼 살가운 사랑을 보여주었던 때가 있다.

이씨가 의대 신입생이었던 80년, 아버지가 일하고 있던 바레인으로 이씨를 제외한 온가족이 떠나게된 것. 몇년동안 혼자 남겨질 딸이 애틋했던 아버지는 겨울방학중에 이씨를 불러 1주일간 꿈같은 유럽여행을 시켜주셨다.

아버지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보고, 알프스 산중의 호숫가를 거닐었던 여행. 스위스의 한 거리를 지나다가 무심코 "저 옷 괜찮네" 하는 이씨의 말에 아버지는 두말 않고 거금 (?) 을 들여 쇼윈도에 걸려있던 검은 색 가죽 점퍼를 사주었다.

정확히 옷값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늘 검소한 생활을 해온데다 어머니에게조차 변변한 선물 한번 한 적이 없는 아버지로선 엄청난 '출혈' 이었을 게 분명했다.

"벌써 20년 가까이 찬바람이 돌 무렵이면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듯 꺼내입곤 했어요. 부분부분 낡긴했지만 평생 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무리해서 일에 전념하다 돌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요즘 명예퇴직이며 불황으로 고민하는 숱한 '아버지' 들이 상담차 병원을 찾아오다보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간절하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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