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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다시 다윈의 목소리를 들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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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는 진화론자 다윈의 탄생 200주년이다. 왜 그런 때에 맞춰 경제위기라는 빙하기가 닥쳤는가. 다윈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 했다. 달라지는 환경에 변화와 적응을 가장 잘하는 존재가 살아남는 것이다. 한국은 멸종하는 공룡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생존력으로 얼음을 뚫고 봄을 피워낼 것인가.

최근 미국 보스턴 컨설팅그룹 조사에서 한국은 글로벌혁신 세계 2위로 꼽혔다. 앞선 나라는 싱가포르뿐이며 미국이 겨우 8위다. 그런데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정말로 이렇게 평가될 만큼 선진화돼 가는가. 일부 기업이 글로벌 혁신을 이룬다 해서 국가가 바뀌는 것일까. ‘글로벌 혁신 세계 2위’는 어쩌면 돼지의 립스틱이요, 뱀이 걸친 비단일지 모른다. 렌즈를 안으로 돌리면 한국은 너무나 멈춰 있다.

1945년 해방 이래 한국은 변화하는 민족, 진화하는 나라였다. 국가를 건설하면서 정체(停滯)의 제도 공산주의를 버리고 혁신의 제도 자본주의를 택했다. 이승만은 농지를 개혁하고 교육을 늘렸으며, 한·미 동맹으로 외연을 넓혔다. 박정희는 변화를 폭발시켰다. 수출입국과 중공업으로 국가의 방향을 틀었고, 산업의 쌀이라는 철을 만들었다. 선구적 기업인들은 조선과 건설로 해외를 뚫었고, 전자산업의 쌀 반도체를 개척했다. 60~80년대 한국은 타고난 진화동물이었다. 전쟁 특수가 있으면 베트남으로, 기름값이 뛰면 중동으로 갔다. 민주화 함성이 들리면 직선제로 달려갔다. 이런 위대한 변화가 있어 위대한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그렇게 역동적이던 진화(進化)가 선진화의 길목에서 멈춰 서 있다. 대통령은 진화의 기수여야 하는데 미흡하다. 돌도끼가 쇠망치로 바뀌었을 뿐 정치권은 석기시대다. 민주화의 성스러운 피와 눈물이 뿌려졌던 그 거리에서 극렬 시민운동가와 진보그룹이 법을 조롱하고 시민을 위협하고 있다. 강경 노조는 변화를 거부하다 분열의 칼날을 맞고 있다. 몇몇 의로운 고투가 있지만 공교육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세계가 미디어 부흥 전쟁인데 한국에선 미디어 영역이 굳게 닫혀 있다. 이런 정체 속에서 그나마 일부 기업이 변화와 혁신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과도 시험에 들고 있다. 고(高)환율의 당의(糖衣)가 벗겨지면 약이 얼마나 쓸지 모른다.

희대의 경제위기는 변화를 위한 희대의 기회일지 모른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한국은 시스템을 바꿨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이제 한국은 다시 바뀌어야 한다. 짧게는 경제위기를 이겨내고, 길게는 글로벌 적자생존을 위해 바꿔야 한다. 대통령에서부터 정부, 여야 정치권, 그리고 기업·노조·시민그룹에 이르기까지 개혁과 변화의 새로운 불길이 타올라야 한다. 중앙일보는 오늘 한국 신문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단행했다. 중·조·동의 안락한 틀에 안주할 수 있지만 우리는 다시 다윈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판도 바꾸고, 품질도 바꿔 한국 사회의 선진화 개혁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동안 중앙일보가 이끌어 온 변화의 과거가 변화의 미래를 보장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