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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음식에 140억 투입 … 한식 세계화의 첨병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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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28면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떡볶이를 먹었을까.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1592년) 이전에는 빨간 떡볶이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견이 있지만 고추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떡볶이의 과거·현재·미래

맵지 않은 궁중떡볶이에서 유래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에 따르면 떡볶이는 궁중음식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궁중떡볶이는 궁중에서 왕이 드시던 맵지 않은 음식이었다. 고기와 함께 채소를 곁들여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음식이었다. 고추가 없던 시절이어서 생나물·마른나물·쇠고기에 간장을 넣고 볶아 만들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궁중떡복이를 떠올리면 된다. 고추가 들어온 뒤 조선 중기의 증보 산림경제(1766년)에 최초로 ‘만초장(蠻椒醬)’이라는 이름으로 고추장 담그는 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8세기 이전까지는 간장 양념만 하는 맵지 않은 떡볶이를 주로 먹었다는 얘기다.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떡볶이가 처음 등장한다. 윤 소장은 “당시 기록으로 볼 때 떡볶이는 원래 기름에 볶는 게 아니라 양념장과 물을 붓고 은근히 끓이는 찜의 한 종류였다”며 “만드는 법도 떡찜 조리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매운맛 본격 등장은 1950년대 이후
떡볶이의 주류가 간장 떡볶이에서 현재의 고추장 떡볶이로 변한 시점 역시 정확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본격적으로 고추장을 이용한 매운 떡볶이가 자리 잡은 시기를 195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궁중과 양반집 음식에서 서민 음식으로 변모한 것이 이때라서다. 매운 떡볶이는 고추장과 설탕·물엿을 이용해 매운맛과 단맛을 강하게 낸다.

서울의 대표 떡볶이는 ‘신당동 떡볶이’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떡과 고추장 소스, 라면 사리, 어묵 등을 넣고 손님이 직접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의 원조이자 ‘맛의 비결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광고 카피로도 잘 알려진 ‘마복림 할머니집’이 유명하다. 70년대 들어 신당동에 떡볶이집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떡볶이 골목이 조성됐다. 당시 떡볶이는 연탄불로 조리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MBC ‘임국희의 여성 살롱’이란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라고 한다. 70년대 중반 떡볶이 집 한 곳이 뮤직박스를 설치하고 DJ를 고용해 인기를 끌면서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들려주는 DJ 문화가 퍼졌다. ‘몇 번 테이블에 라면 사리 하나 추가~’ 따위로 가끔 개그 소재로 활용되는 우스꽝스러운 DJ의 멘트가 여기서 나왔다. 가수 DJ DOC의 노래 ‘허리케인 박’에 나오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떡볶이를 너무 좋아해/찾아간 곳은/찾아간 곳은/신당동 떡볶이집”이라는 가사에 나올 정도로 신당동의 즉석 떡볶이는 한 시대의 문화코드였다.
 
장수 길거리 음식의 으뜸
떡볶이가 대중화된 이유는 무엇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 때문이다. 조리하기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조리법이 간단해 길거리에서 요리하기도 쉽다. 한국 어디를 가든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를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길거리 음식으로서 생명력도 길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박남수 팀장은 “떡볶이와 어묵 등 몇 가지를 제외하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생존해온 길거리 음식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길거리 음식은 요란하게 뜨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박 팀장은 “수년 전 중국 만두인 딤섬이나 일본에서 인기 있는 단밤을 파는 노점이 등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2~3년 전부터 프랜차이즈화
포장마차 음식에 머물던 떡볶이가 최근 몇 년 새 브랜드화하고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깨끗한 인테리어의 점포 안 메뉴로 바뀐 것은 물론 메뉴도 다양화했다. ‘자장 떡볶이’ ‘마늘 떡볶이’뿐만 아니라 떡 모양도 길죽한 것에서 별·돼지 모양까지 무척 다양해졌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장은 “2~3년 전부터 판매방식이 길거리 매장에서 카페 형태의 실내 점포로 바뀌면서 떡볶이가 위생적인 건강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떡볶이에 해물이나 등갈비 등을 추가한 ‘떡찜’도 1~2년 전 보급되기 시작했다. 가격이 분식집 떡볶이보다 비싸지만 푸짐하게 나오기 때문에 간식보다 한 끼 식사로 대접받는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떡볶이를 메뉴로 내놓고 있는 프랜차이즈업체는 아딸·해피궁·올리브떡볶이·디델리 등 33개며, 가맹점은 1100개 정도다. 지난해 기준으로 떡면(떡볶이용 떡) 시장은 2100억원 규모다. 쌀떡 시장(1532억원)이 밀가루떡 시장(552억원)보다 크다. 전체 떡면의 11%가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소비된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고급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정식 메뉴로 자리 잡았다. 이런 곳에선 고추장보단 간장으로 양념한 궁중떡볶이가 많은 편이다. 고기와 버섯 등 비싼 재료를 넣어 가격은 1만원대 이상으로 비싸다. 떡볶이도 얼마든지 웰빙 트렌드에 맞춰 고급 건강식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에 따라 케첩이나 후추·겨자 등을 첨가해 독특한 맛을 내기도 한다. 추가하는 양념 종류에 따라 치즈 떡볶이, 곱창 떡볶이, 자장 떡볶이 등 메뉴는 무궁무진하게 달라진다.
 
세련된 마케팅으로 세계 겨냥
떡볶이를 영문표기법으로 표기하면 ‘Tteokbokki’다. 하지만 이 철자는 너무 길고 복잡하다. 외국인이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렵다. 농식품부는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선 보다 친숙한 영문 표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언어학자·요리전문가와 영어권·비영어권 외국인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나온 떡볶이의 국제 이름이 ‘Topokki’다. 농식품부 농산경영팀 윤재돈 주무관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Topoki’가 발음하기는 약간 쉬웠지만 떡볶이의 원래 발음 ‘떡뽀끼’와 비슷하고 발음할 때 된소리가 나와 힘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Topokki’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에게 이국적이면서도 강한 청각적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Topokki’가 웹스터 등 외국의 주요 사전에 정식으로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떡볶이 축제도 연다. 농식품부와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28~29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2009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떡볶이 축제가 정부 주최로 열릴 정도로 대접이 달라졌다. 농식품부는 올해 부터 5년간 떡볶이 생산개발·수출·해외홍보 3개 분야에 14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ㅠ>초밥·파스타처럼 성공할 수 있어
11일 떡볶이연구소 개소식에서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떡면이 공개됐다. 대부분 시판 중인 제품이지만 홍삼가루를 넣은 떡면 등 신개념의 제품도 있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이종규 상무는 “현재 떡면은 조직감(씹는 맛)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모양의 다양화를 꾀하는 수준”이라며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쫄깃쫄깃한 정도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중국·일본 이외의 나라 사람은 쫄깃한 떡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떡볶이 메뉴의 규격화·표준화도 시급하다. 하영제 농식품부 2차관은 “흔히 한국 요리를 설명하면서 ‘소금 적당량’ ‘참기름 몇 방울’ 따위로 대충 말하는데, 외국인은 이런 조리법에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말했다. 매운맛 측정 기기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단맛·신맛처럼 매운맛도 측정할 수 있어야 세계인의 입맛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효 떡볶기연구소장은 “떡면과 소스를 다양화하고 조리법을 표준화·매뉴얼화해 떡볶이를 이탈리아의 스파게티와 일본의 초밥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메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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