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내 남편 내 마누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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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07면

독일 시골 마을의 노부부 루디(엘마 베퍼)와 트루디(한넬로어 엘스너). 일생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아온 남편 루디가 말기 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트루디는 장성한 자녀들이 살고 있는 베를린으로 여행을 제안한다. 그러나 자식들은 노부모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이처럼 쓸쓸한 여행 중 돌연 호텔에서 숨을 거둔 이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다. 루디는 아내의 죽음 이후 그녀가 평생 동경했던 일본 여행길에 오른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갑자기 찾아온 노부부의 사별을 소재로 한 가족멜로다. 삶과 죽음, 고독과 소통의 의미가 잔잔하게 그려진다. 펑펑 울게 되기보다는 오랫동안 코끝이 찡해 더 여운이 깊은 쪽이다. 2008년 시애틀 국제영화제 최고작품상, 2007년 독일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최근 작은 영화 흥행 붐에 힘입어 관객 1만 명을 넘기며 순항 중이다. 특히 중장년층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노처녀의 개성적인 자아 찾기로 유명한 ‘파니 핑크’로 잘 알려진 도리스 되리 감독의 영화다. 페미니스트 감독답게 여성·노인·소수자의 소통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고독한 노부부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이들은 자식들이 아니라 딸의 동성애 파트너, 그리고 일본에서 만난, ‘부토’ 춤을 추는 노숙자 소녀다.

영화는 감독 특유의,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도 거듭 보여 준다. 1984년 데뷔작 ‘마음의 중심에서’가 도쿄 영화제에 초청된 후 줄곧 일본의 매력에 빠져온 그다. 중년의 위기를 겪는 독일인 형제의 좌충우돌 일본 탐방기를 담은 ‘계몽시대’(2000), 일본 애호가 커플의 로맨스 ‘내 남자의 유통기한’(2005)에 이어 일본에서 작업한 세 번째 영화다. 스스로 “오즈의 ‘동경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듯 영화 전반부는 ‘동경이야기’를 빼다 박았다.

짜인 대본 대신 상황과 설정만을 배우들에게 던져주고, HD 카메라로 관찰하듯 찍어냈다. 노 메이크업으로 인생의 깊이를 열연한 두 주연배우에 대해 감독은 “사자와 같은 심장을 가진, 용감하고 과감한 배우가 아니고서는 힘든 연기”라고 호평했다.

극중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는 ‘부토’는 명상적인 우아함과 기괴함을 오가는 일본의 현대무용극. 60년대 일본 히피문화와 독일 표현주의 무용이 결합한 것이다. 루디가 죽은 아내의 옷을 입고, 벚꽃 아래에서 생전 아내가 간절히 춤추고 싶어 한 부토를 추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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