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NSW아트갤러리서 '몸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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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나' 라는 정체성을 가장 쉽게 드러내는 물리적인 도구는 바로 내 '몸' .나를 표현하고 남을 인식할 수 있는 이 신체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 최근 미술뿐 아니라 문학등 전반적인 예술 분야에서 분출되고 있는 인체에 대한 관심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신체를 풀이하는 난해한 개념과 복잡한 문화적 배경을 모른다 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체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해석이 있기 마련이어서 일단 그 존재를 알아차리자 빠른 속도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는 '몸 (MOMM)' 이라는 제목의 복합 문화잡지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신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호주 시드니에서 가장 넓은 녹지가 꾸며진 도메인 지역에 위치한 고풍스런 외관의 미술관 뉴 사우스 웨일즈 아트 갤러리 (The Art Gallery of NSW)에서는 지난 9월13일부터 오는 11월16일까지 특별기획전 '몸 (Body) ' 이 펼쳐지고 있다.

NSW 아트 갤러리의 큐레이터 앤소니 본드의 주도로 3년의 준비 기간 끝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미국의 휘트니미술관과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 파리 국립근대미술관등 세계 각국의 주요 미술관과 컬렉션 60군데에서 빌려온 명작을 비롯 모두 1백60여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구스타브 쿠르베 (1819~1877) 같은 19세기 사실주의 작가에서부터 출발해 마르셀 뒤샹 (1887~1968) 과 요셉 보이스 (1921~1986) 를 거쳐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51.여) 등 20세기 현대작가까지 1백50년 동안에 걸친 서구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르느와르의 미소년 누드 '고양이와 함께 있는 소년' 처럼 한눈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고전적인 누드작품이 있는가하면 '심장 약한 사람은 보지 말라' 는 경고 표지판이 필요할 만큼 끔찍한 시드니 작가 마이크 파르 (52) 의 퍼포먼스 필름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이 망라돼 있다.

하지만 전시는 연대순의 평범한 방식이 아니라 신체를 대하는 방식, 혹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해석되는 방식에 맞춰 모두 8개의 테마별로 나뉘어 있어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현대작가들과 이들에게 영감을 준 19세기 작가들의 작품이 나란히 놓여 작품 탄생의 문맥까지 보여주어 흥미롭다.

첫번째 섹션 '사적인 공간, 관음증' 은 누드에 촛점이 맞춰진 섹션이다.

에드가 드가의 조각과 피에르 보나르의 명작 '목욕' 처럼 인체를 심미적인 관점에서 풀이한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뉴욕의 비디오 작가 토니 아우슬러처럼 프라이버시의 문제를 제기한 작가도 있다.

두번째 섹션 '풍경, 폭포 그리고 구멍 : 성적 은유' 는 제목이 암시하듯 여체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풍경을 차용한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은 쿠르베의 '원천' 이다.

루 계곡 골짜기의 작은 폭포에 서있는 여인의 뒷모습 나체를 담은 1862년 작품으로 이후 리처드 바키에나 마르셀 뒤샹.아니쉬 카푸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이다.

이처럼 자연 속의 인물을 담은 작품 외에 자연의 풍경 자체만으로도 인체를 성적으로 은유한 페미니즘 작가 아나 멘디에타의 사진작품을 통해서는 자연을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의 시각차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 직접적으로 신체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신체가 사회적으로 해석되어지는 맥락을 보여주는 루이 브루조아의 작품등도 눈길을 끈다.

시드니 =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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