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종전 30년, 베트남 하미쭝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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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호찌민(옛 사이공)시에서 한 쌍의 연인이 종전 30주년을 축하하는 대형 안내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안내판의 '30-4'는 전쟁이 끝난 날인 4월 30일을, '1975-2005'는 종전부터 올해까지의 기간을 뜻한다.[AP=연합]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여 만에 도착한 이 나라 제3의 도시 다낭. 29일 오후 거리는 붉은 바탕에 노란 별이 그려져 있는 베트남 국기로 뒤덮여 있었다. 베트남전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이곳에 종전 30주년을 하루 앞두고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곳에서 차로 30여분 달려간 꽝남현의 하미쭝 마을. 역시'통일의 날'이자'해방의 날'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물결을 이뤘다. 마을 중심의 대형 스피커에선 '혁명가'가 쉴새없이 울려퍼졌다.

다낭시에서 20㎞가량 떨어진 이 마을은 작전 중이던 한국군에 의해 많은 주민이 희생된 곳. 마을 입구에 누각처럼 서 있는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국군에 희생된 주민을 위한 위령탑이었다. 비석에는 1968년 2월 26일 135명의 주민이 한국군에게 사살당했다는 설명이 새겨져 있었다.

순간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주민들이 한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표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마을 외곽의 호안비엔 초등학교를 찾아가자 교사와 학생 모두 환영 일색이었다. 이 학교는 200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화해의 뜻으로 지어준 것이었다. 5만 달러의 한국 정부 지원금으로 지은 7개의 교실에는 300여 명의 학생이 베트남의 미래를 일구고 있었다. 르꾹(50)교장은 "제게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우호적인 나라"라며 웃었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 누구에게서도 한국을 원망하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68년 한국군의 총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인 팜띠호아(78) 할머니는 "원한도 없고 보상도 원치 않는다. 다만 한국의 도움으로 베트남이 잘살 수 있기를 바란다"며 오랫동안 꼭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이 지역에는 베트남인과 한국인의 마음을 잇는 징검다리가 하나 있다. 한국인이 만든 의류공장 ㈜대명이다. 직원 300여 명 중 절반가량이 전쟁 때 한국군에게 피해를 본 가족이나 친지를 두고 있다. 경리 담당 응우엔띠슈안안(25.여)은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지금은 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루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낭대에는 올 2학기부터 태권도학과와 한국어학과가 개설된다. 3년 전 베트남에 정착해 태권도를 보급해 오다 이 대학 태권도학과를 맡게 된 정용산(55)씨는 "집집마다 한국 연속극 등 한국 문화를 즐기고, 이에 힘입어 태권도와 한국어의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낭(베트남)=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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