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비디오아트 역사 보여주는 독일 비디오조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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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963년 3월11일 독일 부퍼탈. 전위미술에 호감을 가졌던 파르나스 화랑에서 유학생인 백남준의 첫번째 개인전이 개막됐다.

이 전시는 보통 전시와는 달랐다.

TV 13대가 동원되고 또한 해프닝이 어우러진 이색 전시였다.

특히 제각각의 TV 화면은 작가의 의도대로 조작된 영상을 내보내고 있어서 뒷날 비디오 아트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기술되는 전시였다.

그런데 이날 백남준은 정신이 없었다.

이방 저방을 돌면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TV 화면조작에 분주했다.

메인 전시실 옆방에서 그가 꾸물대는 동안 첫번째 비디오 아트전은 어이없게 개막됐다.

도끼를 외투 속에 감추고서 찾아온 조셉 보이스에 의해 백남준이 자랑하는 이바하 피아노 한대가 무참히 박살나는 해프닝으로서 이 역사적인 전시가 오픈된 것이다.

비록 백남준이 지켜보지 못했더라도 독일은 그에게 비디오 아트의 탄생에 태반 (胎盤) 을 빌려준 곳이다.

현대음악의 쇤 베르크는 물론 플럭서스의 볼프 보스텔나 조지 마키나우스 그리고 존 케이지.조셉 보이스를 만나 영향을 받은 곳이 독일이었다.

백남준은 이해 겨울 일본을 거쳐 미국에 건너갔다.

그리고 미국식 팝 (pop) 아트의 세례를 받아 작업도 조금 바뀌었다.

그러나 그래도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힘이 그의 작품에 짙은 것은 첫 출발지였던 독일적 풍토에서 배양된 사고의 방식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독일 비디오 아트전은 백남준과 독일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전시다.

(7일까지 580 - 1234) 또 게르만적인 관념주의가 비디오 아트와 만날때 어떤 모습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전시에는 백남준과 볼프 보스텔을 비롯해 연령별로 고르게 분포된 독일의 비디오 아트작가 16명의 작품 18점이 전시중이다.

작품은 심각하게 관념적인 것에서부터 척보면 알아차릴만한 미국식 접근법까지 다양하다.

평화와 폭력을 비둘기와 전쟁장면으로 대비시킨 마르셀 오덴바흐나 2대의 카메라와 2대의 모니터가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 디터 키슬링, 정보시대를 풍자하는 크라우스 뵘러등은 전자에 속한다.

전시장 감시원이 TV 속에 들어가 있는 안나 안더스와 젊고 늙은 여성의 신체를 통해 생명을 말하려는 프란치스카 메거트는 후자쪽에 가깝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눈으로 보고 한번 더 생각해야만 이해가 시각된다는 점에서 독일적이란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다.

위대하고 역사적이라고 해서 그 탄생까지 거창한 것은 아니다.

비디오 아트는 60년대 중반을 넘어서 탄생했다.

그러나 20세기 중에 생성.소멸했던 여타 장르와 달리 생명력이 길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현대라는 과학기술의 시대를 잘 반영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비디오 아트이지만 탄생은 희미했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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