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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계획 설계했던 강홍빈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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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했던 행정수도 건설계획에 참여했던 강홍빈(서울시립대 도시계획학과)교수는 "지금 돌아보면 (그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회고했다.

강 교수는 1977년 임시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입지선정 절차가 시작될 무렵부터 79년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부설 지역개발연구소 도시주택부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행정수도 마스터플랜 설계작업의 실무책임자로 일했다. 당시 그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막 박사학위를 끝낸 35세의 나이였다.

강 교수는 임시행정수도를 계획하던 70년대 말의 상황과 지금은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때는 75년 월남 패망 이후 안보상황이 심각한 상태로 임시행정수도 건설의 가장 큰 이유가 안보 문제였다. 이 때문에 마스터 플랜에서 정부청사나 대통령 관저의 입지도 곡사포의 피격이 어려운 곳으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당시는 권력과 경제.금융.사회의 통제력을 정부가 다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수도 이전의 효과가 확실했을 것"이라면서 "지금은 정부가 그런 통제력을 가지지도 않았고 경제도 시장경제 상황으로 바뀐 시점에 행정수도를 만드는 것이 무슨 큰 효과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가 나서는 것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안보 때문에 이전할 이유가 없어진 마당에 오히려 통일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3년을 거의 밤잠도 못 자면서 마스터 플랜을 완성했고, 그때 수준으로는 최상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자부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도시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70년대 임시행정수도를 추진하던 때는 부동산 개발의 부작용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었지만, 이제 그런 경험이 축적된 마당에 또다시 그런 부작용을 자초하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는 "대규모 주거단지 정도를 넘어선 인구 50만명 이상의 도시를 인위적으로 만들 역량은 누구에게도 없다"며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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