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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랑 보수랑] 2. 한국·서구 역사 속 이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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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한민국 건국에서 1987년까지는 보수의 시대였다. 진보 진영은 권력의 탄압에 의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그래서 보수는 자기를 보수라고 상대화할 필요조차 없었다.

해방(45년)에서 건국(48년)을 거쳐 전쟁(5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나라의 시스템을 사회주의 좌파 체제로 가져갈 것이냐, 자본주의 우파 체제로 가져갈 것이냐를 두고 동족 간에 죽고 죽이는 투쟁을 벌였다. 연세대 유석춘(사회학)교수는 "한국에서 진보가 인권.분배.평등을 선호했다면, 보수 세력은 안보.성장.경쟁의 가치를 중시했다"고 했다.

우파가 미국의 도움으로 승리한 뒤 좌파세력은 갈 곳이 없어졌다. 좌파는 빨갱이로 낙인찍혀 정치적.법적.사회적으로 제거되거나 우파.중도로 전향해야 했다. 혁신.진보 같은 용어도 좌파의 한 갈래로 위험시됐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걸맞은 '시장'을 창조하려는 우파의 노력이 이어졌다.

60년대 이후 외자를 활용한 우파의 경제개발 정책은 국민소득을 증대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해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70년대에 경제.국방 분야의 체제 경쟁에서 한국은 북한을 눌렀다. 하지만 경제성장 쪽에 국가적 에너지가 집중된 나머지 민주화.인권.소득분배 같은 진보의 가치는 무시됐다. 기득권 세력이 반공을 권력 강화의 명분으로 악용하고, 정경유착으로 부패가 구조화돼 보수의 공정성과 도덕성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보수주의 물결은 96년 총선과 97년 대선 때 절정에 달했다. 96년 총선 때 3김씨의 당은 '개혁 보수' '온건 보수' '원조 보수'논쟁을 벌일 정도로 정치시장에서 보수주의의 주가가 높았다. 97년 대선에서 색깔론 공격을 받던 김대중 후보는 보수주의자인 김종필 총재와 손을 잡고서야 겨우 집권에 성공했다.

진보가 모처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87년 6.10항쟁 이후다. 보수 일색이었던 한국 사회는 봇물처럼 터져 나온 민주화 욕구를 배경으로 보수와 진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6.10운동은 진보 세력의 저수지였다. 학생.노동.시민세력 등 여러 색깔의 반독재 민주화 세력이 이곳에 흘러들어 왔고, 전대협 같은 전투적인 학생운동과 경실련.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으로 상징되는 온건한 비정부조직(NGO) 시민운동 등 여러 갈래의 진보 노선이 이곳에서 흘러 나갔다.

그러던 중 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옛 소련이 89년 붕괴했다. 이 사건은 진보 진영의 영원한 테마인 혁명주의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혁명주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북한과의 연대(민족해방파.NL)나 노동자 등 민중의 봉기(민중민주주의.PD)에 의해 뒤엎어 버리겠다는 과격 노선이었다.

혁명주의가 힘을 잃자 진보 진영은 '체제 내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는 공통의 특징을 처음으로 나눠 가질 수 있게 됐다. 장기표씨와 김문수.이재오(한나라당 의원).노회찬(민주노동당 의원)씨 등이 92년 민중당을 창당한 것도 좌파 이념을 선거를 통해 추구한다는 체제 내 노선이었다. 이런 식으로 진보 진영은 정치.사회.문화 영역에서 더 규모가 커지고, 더 다양한 분야로 나눠졌다.

진보의 위력이 맹위를 떨친 것은 올해 총선 때였다.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은 득표율 13%의 지지와 10석의 의석을 얻었다. 스스로 좌파임을 천명한 민주노동당 강령은 반미와 반자본가 정신으로 가득차 있다. 민노당을 지지한 모든 유권자들이 강령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진보주의가 보수와 중도로 양분된 정치사회를 압박한 끝에 진보를 표방한 민노당의 국회 입성을 끌어낸 것만은 틀림없다.

미국과 자본주의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라고 생각해온 보수 세력에겐 충격이었다. 더구나 정통 보수주의 정당을 자임한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 사상 처음으로 원내 1당의 지위를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에 넘겨줘야 했다. 열린우리당 의원의 86%는 자신의 성향을 진보 혹은 중도로 답변했다(중앙일보 4월 17일자 설문조사).

성공회대 조희연(사회학) 교수는 "진보세력은 그동안 도전과 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민주화.다원성.개혁의 가치를 대중화했다"며 "반면 보수주의는 과거의 가치에 집착하는 바람에 진보와의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진보의 기세가 높지만 보수가 해온 역할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학을 전공한 김충남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연구위원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체제의 울타리를 치고(건국), 체제를 방어하고(전쟁), 체제에 내용을 채운(경제 성장) 국가건설(nation-building) 단계의 지도자"라며 "체제가 완성된 정상 국가의 가치기준으로 이들의 공로를 낮게 평가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유석춘 교수는 "보수가 이룩한 국가 건설과 산업화가 지금 보수. 진보가 공존하는 터전이 됐다는 점은 진보측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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