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슬로바키아를 '유럽 거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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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전자가 슬로바키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디지털 전자제품 생산기지로 바꿔 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슬로바키아 갈란타 지역에 제2공장을 지어 PDP, LCD TV 등 연간 750만대의 전자제품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이 생산량은 유럽은 물론 독립국가연합(CIS) 시장의 주문까지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규모다.

갈란타는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동남쪽으로 65㎞ 가량 떨어진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슬로바키아 안에서도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으로 제조업체가 거의 없다. 삼성이 둥지를 튼 곳은 1989년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 10여년 동안 폐쇄됐던 가구공장 부지(4만2000평)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이 공장 터를 2002년 5월 경매를 통해 사들인 후 5개월 만에 시험생산 체제를 갖추면서 이 지역 경제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진출 첫 해에 고용한 현지 인력은 180명에 그쳤으나 2년 새 1000명이 넘어섰다. 지난해 7월 이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한 가스파로비츠 슬로바키아 대통령은 "희망이 없던 이 땅에 삼성전자가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는 글귀를 방명록에 남겼다. 공장으로 가는 길 곳곳에 삼성의 표지판이 서 있을 정도로 삼성전자는 갈란타 지역의 대표적인 제조업체로 꼽힌다. 지난해 슬로바키아 진출 1년 만에 2억2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이익(300만달러)도 냈다. 올해 11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슬로바키아 내의 기업 랭킹 5위권에 진입할 전망이다.

슬로바키아 생산법인의 이종찬 부사장은 "슬로바키아 공장은 삼성전자가 유럽시장을 겨냥해 배수의 진을 친 곳"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슬로바키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을 때 동유럽에 하나의 공급 기지를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삼성이 지난해 말 영국과 스페인의 현지 공장을 철수키로 확정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유럽의 거점 생산기지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과 스페인에 있던 생산설비 대부분을 슬로바키아로 옮기기로 했고 갈란타 지역 안에 또 다른 공장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현지 당국과 협의 중이다. 지난 5월 슬로바키아가 정식으로 유럽연합(EU)에 가입한 것도 투자를 늘리는 계기가 됐다. 이 공장 김성진 관리과장은 "EU 가입 전보다 제품 통관이 빨라졌다"고 말했다.

슬로바키아는 삼성전자에 세전 이익이 8000만달러에 이를 때까지는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혜택을 줬다. 또 인건비가 서유럽의 20% 수준인 시간당 2달러에 불과하다. 삼성 측은 올해 안에 그동안의 투자금(4600만달러 규모)을 전액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외자유치관리청(SARIO)의 젬버 대변인은 "삼성전자가 모범적으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추가 지원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슬로바키아=1993년 체고슬로바키아 연방에서 떨어져 나왔다. 서유럽 국가와 가까워 유럽시장 공략의 전진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국토면적은 남한의 절반 수준이며 인구는 550만명이다. 올 1월 법인세를 25%에서 19%로 낮추는 등 외자유치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말 현재 외국인의 직접투자 규모는 60억달러에 이른다. 특히 폴크스바겐.푸조 등 자동차 회사를 불러 들여 연간 자동차 생산규모가 500만대나 된다. 지난 4월엔 기아자동차가 현지 공장 기공식을 했다.

갈란타(슬로바키아)=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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