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도우미] 판 사람이 명의신탁 모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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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 이기형 변호사

Q : 친구와 합의하에 친구 명의로 아파트를 매입, 등기 이전도 친구 앞으로 했다. 돈은 모두 내가 댔는데 아파트값이 오르자 친구가 자신의 것이라며 등기이전을 거부하고 있다. 아파트를 반환받을 수 있나.

A :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부동산인데 아무런 거래 없이 등기만 다른 사람 명의로 옮겨두는 것을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그동안 명의신탁은 탈세나 투기 등의 목적으로 악용돼 왔다. 부동산실명법은 명의신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위반할 경우 명의신탁자(명의를 빌린 사람)에게 해당 부동산 가액의 3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고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명의를 빌려준 사람) 모두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부동산실명법상 이러한 명의신탁 약정과 물권 변동은 원칙적으로 무효다. 이 법 시행(1995년 7월 1일) 이전의 판례는 명의신탁도 하나의 신탁행위로 간주, 그 효력을 인정했으나 그 후에는 무효로 본다.

명의신탁자는 소유권에 기초해 명의수탁자에게 소유권 이전 등기 말소와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한다. 즉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팔아 제3자에게 등기를 넘기면 제3자가 이 사실을 알더라도 이 사람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명의수탁자는 남의 물건을 동의 없이 처분했으므로 형법상 횡령죄의 처벌을 받고 이에 적극 가담해 명의신탁 재산을 매수한 제3자는 공범으로 처벌된다는 게 판례다.

다만 명의신탁 유형 가운데 질문과 같은 계약명의신탁은 좀 다르다. 계약명의신탁이란 명의신탁자는 매매 비용만 대고 명의수탁자가 자신의 명의로 산 뒤 등기도 자신 앞으로 이전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이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이런 계약명의신탁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실명법은 특별히 이런 계약명의신탁에 대해선 매도인(질문의 경우 친구에게 아파트를 판 사람)이 명의신탁 사실을 모르고 판 경우 물권 변동은 유효하다고 본다. 이 경우 명의수탁자(친구)는 사법상으로도 유효하게 소유권을 취득한 것이므로 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해도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에 대해 부당이득으로 매매비용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부동산 자체의 반환은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반대로 매도인이 명의신탁 사실을 알면 물권 변동은 무효가 되므로 소유권은 매도인에게 귀속되고, 명의신탁자는 매도인을 대위(채권자가 채무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행위)해 명의수탁자에게 등기말소를 청구할 수 있다. 이기형 변호사 02-533-6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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