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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감독,데미 무어 주연 'GI제인' 제작…강인한 여인상 보여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여자가 남자만 못하다고?"

리들리 스콧 감독이 창출해 내는 여성 인물들을 섣불리 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에일리언' 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들어낸 여전사 리플리는 영화가 절반이 지나갈 때까지 주인공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가공할 에일리언에 의해 강인한 남자들이 무기력하게 쓰러져가자 극한의 위기에서 혼자 살아남아 남자보다 용감하고 유능하게 대적하는 리플리의 변신이 이 영화 특유의 힘이었다.

극도로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에일리언과 여전사 리플리의 모습은 이후 속편들로 화려하게 이어졌다.

우주를 여행할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미래의 세계에서 미지의 생명체를 만나게 된 인간은 남녀 구분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나 데이비스와 수잔 서랜든이 막가는 주부들로 나오는 '델마와 루이스' 는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반항을 신나게 발산한다.

겁탈하려는 남자를 권총으로 쏴 죽이는가 하면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조 트레일러를 폭파시키기도 하는 델마와 루이스는 내키는 대로 일을 저지르는 서부 활극의 카우보이들보다 더 드세보였다.

자동차를 타고 그랜드 캐년의 절벽을 날아가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은 불현듯 남자들로 하여금 비겁하고 왜소해지는 느낌을 갖게 한다.

스콧 감독은 이제 미래 세계나 경찰에 쫓기는 속수무책의 상황에서가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 선택하는 남녀 평등의 실험장을 보여준다.

신작 'G.I.제인' 에서 로맨스 영화에 단골이었던 데미 무어는 미군 가운데 가장 지독한 훈련으로 악명높은 해군 특수부대 (Navy SEAL)에 입대한다.

미국의 정치적 쇼에서 비롯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지만 주인공은 여군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십분 과시할 기회로 삼는다.

남자들조차 견디기 어려운 네이비 실의 훈련을 거뜬히 통과하고 동료와 교관의 질시를 극복하며 나아가 여성상원의원 (앤 밴크로프트) 의 비열한 정치적 쇼를 깨부수며 구리빛 피부의 군인이 된다.

데미 무어는 몸을 던지는 연기를 펼치면서 행복한 사랑을 성취하는 로맨스의 주인공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해피 엔딩을 맞게 된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훈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장면들을 통해 남녀의 육체적 차이는 겉보기와 기능상의 차이일 따름이지 권력관계와 효용성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난히 가슴이 큰 데미 무어가 '에일리언3' 에서의 시고니 위버처럼 삭발을 한 채 스턴트 맨을 쓰지 않고 한팔로 팔굽혀펴기를 직접 연기하는 것 자체도 지금까지 여자를 규정해 왔던 시선에 거스르는 것이다.

스콧 감독의 의도는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가치추구나 남녀의 성 대결이 아니라 '에일리언' 에서 처럼 남녀를 구분해 온 기존의 통념을 여지없이 파괴해버리는 데서 희열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G.I.제인' 의 시나리오를 쓴 여성작가 다니엘 알렉산드라는 이 영화를 통해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남자들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 보여주고 싶었다" 고 말했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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