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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도시인의 삶] 화재진압 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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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9일 오후 2시 서울 양천소방서 1층 출동대기실. 한 빌딩에서 불이 났다는 방송과 함께 벨이 울리자 119안전센터 부센터장 박수철(53) 소방위를 비롯한 소방관 9명이 뛰기 시작했다.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던 소방관도, 화장실에서 세수하던 소방관도 방수복을 챙겨 입고는 뛰어나갔다.

9일 서울 양천소방서 화재 진압 훈련장에서 진경백 소방장과 이현택 기자가 함께 불을 끄는 훈련을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사다리차와 굴절차를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배치하고 곧바로 진화에 들어갔다. 25m까지 올라가면서 360도 회전이 가능한 굴절차의 탑승대에 탄 경력 20년의 진경백(49) 소방장이 “발사”라고 외쳤다. 그 순간 소방 호스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호스를 잡은 진 소방장의 손이 부르르 떨린다. 힘을 주지 않으면 뒤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소방차의 수압은 8㎏/㎠. 유리창 몇 개쯤은 간단히 깰 수 있는 힘으로 최고 20㎏/㎠까지 올라간다.

불길이 잡히자 진 소방장은 후배 김동훈(32) 소방사와 함께 베란다를 통해 석유 냄새가 가득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등에 멘 공기호흡기의 산소는 20분이면 바닥난다. 연기가 자욱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진 소방장은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조심스레 확인한다. 셋째 사무실에서 연기에 질식해 쓰러진 20대 여성 두 명을 발견해 둘러업고 나와 대기하고 있던 구조요원에게 인계한다. 소방관들이 빌딩에 투입된 지 10분 만이다. 김동훈 소방사는 “건물 내부에 여전히 불길이 남아있어 애먹었다. 공기호흡기의 산소가 떨어져 산소통을 바꾸고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양천소방서의 모의화재 훈련 현장이다. 소방관들은 소방서 뒷마당에서 가상의 화재현장을 만든 뒤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한다. 소방서는 직원들에게 예고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세 차례 이 같은 훈련을 한다.

20분밖에 걸리지 않은 훈련이지만, 불을 끄고 난 소방관들의 온몸에선 땀이 줄줄 흘렀다. 실제 화재현장에서는 대여섯 시간씩 화마(火魔)와 맞서야 할 때도 많다. 게다가 일산화탄소·산화수소 등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형광등이 깨지면서 파편이 튀기도 한다. 소방관들은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도록 실전처럼 훈련한다.

24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 소방관들은 바쁘다. 오전 8시30분에 출근하면 화재가 났을 경우 출동 전술을 연구하는 도상훈련을 하거나, 구급법을 익힌다. 그러곤 화재 진압 훈련과 소방차 점검이 이어진다. 야간에는 상황실 당직을 서고, 화재 취약지점을 점검한다.

소방관들은 직업병이 있다. 박수철 부센터장은 “집에서도 전화벨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자동차 열쇠부터 찾을 정도”라고 말했다. 화재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마셔 호흡이 불편하거나 폐에 질환이 있는 경우도 많다.

소방관들은 목소리가 크다. 화재 현장에서는 소방차에서 나오는 기계음과 물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 등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아 소리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재 현장에서 동료가 눈앞에서 목숨을 잃거나 본인이 다치면 악몽으로 고생한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최근 7개 종합병원과 협약했다. 오석필(52) 소방경은 “스트레스도 많고 몸도 힘들지만, 소방관들은 불이 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빨리 출동해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고 본다”고 말했다.

훈련이 끝난 뒤 진 소방장이 한마디 했다. “내가 불법 주차하면, 화재가 났을 때 소방차가 들어오지 못해 우리 집이 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이현택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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