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스타] Mr.봉이 누구야 … 또 다른 ‘일본 킬러’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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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봉중근(29·LG)이 새로운 ‘일본 킬러’로 떠올랐다.

‘김광현(21·SK)을 자세히 연구했다’고 좋아했던 일본이 봉중근의 등장으로 다시 혼란에 빠졌다.

왼손투수 봉중근은 9일 WBC A조 1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선발 5와3분의1이닝 동안 일본 타선을 3피안타·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볼넷도, 사구도 하나 없는 깔끔하고 완벽한 피칭이었다.

지난 7일 2-14로 일본에 콜드게임으로 진 아픔도, 일본전 첫 등판이라는 부담감도 그에겐 없었다. 이날 등판 전 봉중근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여유가 있었다. 승리를 거둔 뒤 봉중근은 “첫 일본전에 져서 다들 속이 상했다. 내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코칭스태프에게 일본전에 나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일본을 이겨 너무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봉중근의 당당함이 일본을 무너뜨렸다. 일본 대표팀의 상징 스즈키 이치로(35·시애틀)도 대수가 아니었다. 봉중근은 1999~2006년 미국에서 뛰었다는 자신감, 그리고 2006년 WBC에서 뛴 경험을 무기로 침착하고 자신 있게 공을 뿌렸다.

1회 말 일본 1번 타자 이치로가 타석에 들어서자 타임을 외치고 주심과 만났다. 이치로에게 열광하는 일본 팬들이 관중석에서 터뜨리는 카메라 플래시가 피칭에 방해가 된다는 항의였다. 이치로를 상대했던 이전의 어느 투수도 어필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기싸움에서 지지 않은 봉중근은 이치로를 2루 땅볼로 잡아냈다. 그는 이치로를 3회 1루 땅볼로 잡아낸 뒤 6회 선두타자로 나온 그를 다시 투수 땅볼로 잡아냈다. 이치로부터 이치로까지. 봉중근은 19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1점도 내주지 않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봉중근은 잘 제구된 직구에 체인지업과 드롭커브를 적절하게 섞어 일본 타자들을 묶었다. 1라운드 한계 투구수에 1개 모자란 69개를 던질 때까지 지칠 줄 몰랐다. 1회 직구 구속이 140㎞ 초반에 그치더니 5회 이날 최고 구속 146㎞를 기록했다.

봉중근은 지난해 일본 퍼시픽리그 MVP 이와쿠마 히사시(28·라쿠텐)와의 선발 대결에서 똑같은 이닝을 던져 1-0으로 이겼다. 일본이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봉중근이 일본 최고 타자 이치로와 최고 투수 이와쿠마를 동시에 꺾은 것이다.

도쿄=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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