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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베어 트랩’도 제주 야생마 못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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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당신은 지금 곰의 덫 입구에 있다.”

양용은이 혼다 클래식에서 PGA투어 첫 우승을 확정지은 뒤 팔을 치켜들고 기뻐하고 있다. 양용은은 “2006년 유러피언투어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했을 때보다 더 기쁘다”고 말했다. [팜비치가든스 AP=연합뉴스]


혼다 클래식이 열린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의 PGA내셔널 골프장 챔피언 코스 15번 홀. 그 앞의 커다란 곰 동상에 이런 문구가 씌어 있다. 이 골프장의 15~17번 홀은 ‘베어 트랩’(곰의 덫)이라고 불린다.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가 2002년 코스를 다시 디자인하면서 이 3개 홀에 골퍼의 발목 잡을 덫을 겹겹이 쳐놨기 때문이다.

베어 트랩은 PGA 투어에서 악명이 높다. 지난해 이 대회 베어 트랩에서 출전 선수의 성적은 합계 356오버파였다. 연속된 3개 홀 중 가장 어려운 지뢰밭이다. 2006년 HSBC챔피언스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해 ‘호랑이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은 양용은이지만 9일(한국시간) 최종 라운드에서 이 곰 덫에 잡힐 뻔했다. 양용은은 4타 차의 여유 있는 선두로 15번 홀에 왔다. 14번 홀에선 코스 밖으로 나갈 것 같던 볼이 나무에 맞고 들어오는 행운도 얻었다. 그러나 곰은 만만치 않았다.

15번 홀은 물을 건너 치는 179야드의 파 3홀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보면 그린은 띠처럼 가로로 길쭉해 공을 세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린 너머엔 벙커다. 양용은의 티샷은 벙커에 빠졌다. 그린 너머 물을 의식해서인지 벙커샷이 짧아 보기를 했다. 양용은은 워터 해저드 투성이인 434야드의 파4 16번 홀에선 안전하게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그러나 역시 물을 넘겨 쳐야 하는 17번 홀(190야드·파 3)에서 티샷이 왼쪽 벙커에 빠져 또 보기를 했다.

2위 존 롤린스가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하면서 양용은은 한 타 차로 쫓기는 아슬아슬한 선두가 됐다. 18번 홀(파 5·604야드)에서 양용은은 티샷과 세컨드 샷을 잘 쳤지만 111야드에서 어프로치 샷을 당겨 치고 말았다. 양용은의 얼굴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2퍼트이면 우승이지만 핀과 거리가 15m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양용은은 “내리막인 데다 잔디 결이 물 쪽으로 흐르고 있어 속도 조절이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용은은 까다로운 롱 퍼트를 홀 두 뼘 옆에 붙이고 파세이브 했다.

양용은은 지난해 이 대회에서는 가장 먼저 경기를 끝냈다. 컷을 통과한 선수 중 가장 성적이 나빠 마지막 라운드엔 아침 일찍 혼자서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경기 시간은 1시간5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진짜 1등으로 경기를 끝냈다. 양용은은 파퍼트를 성공한 뒤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고 눈물을 흘렸다. 최종 라운드 2언더파 68타, 합계 9언더파의 한 타 차 우승이다.


PGA 투어 첫 우승을 차지한 양용은은 월드골프챔피언십과 마스터스 출전권도 따냈다. 위창수는 3언더파 공동 9위를 기록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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