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 휩싸인 신한국당…분열상 깊어진 중진협 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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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권력구조 개편과 후임대표 문제등으로 비롯된 신한국당의 분열.분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회창 (李會昌) 대표가 22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보수대연합은 없다" 고 했는데도 개혁파들은 잘 믿지 않는다.

반면 보수파들은 "보수대연합만이 살길" 이라고 계속 주장한다.

노선갈등을 넘어 노선투쟁이 표출되는 형국이다.

후임대표 문제와 관련해선 당권투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그 때문에 李대표는 "지도력.정치력이 없다" 는 소리를 또한번 듣게 됐다.

적 (敵) 앞에 약점과 치부만 자꾸 노출시키고 있다.

이런 판이니 패배주의가 쫙 깔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 좋은 본보기가 23일 있은 중진협의회 첫 회의다.

한 중국음식점에서 2시간30분에 걸친 이 회의에선 "이런 식으로 가다간 (대선에서) 지고 만다" 는 이야기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난국극복을 위한 절묘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위기의 본질을 보는 시각과 그 처방에 대한 생각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李대표를 비롯한 경선주자들과 5선이상의 중진의원 17명이 참석한 회의에선 구성원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난 이야기만 나왔다.

민주계의 김덕룡 (金德龍).신상우 (辛相佑) 의원은 '문민개혁' 의 후퇴.퇴보는 절대 안된다고 했으나, 민정계의 권익현 (權翊鉉) 고문은 "문민정부라는 단어에 식상해 하는 국민도 있다" 고 반격했다.

민정계의 김종호 (金宗鎬) 의원은 "범보수대연합을 추진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게다가 김수한 (金守漢) 국회의장과 김윤환 (金潤煥).이수성 (李壽成).박찬종 (朴燦鍾).민관식 (閔寬植) 고문, 서석재 (徐錫宰) 의원등이 개인일정등을 이유로 불참했고 이들중 일부는 李대표의 당운영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에 빠진 것으로 알려져 이날 회의는 당분열의 축소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다음은 발언록.

▶신상우의원 = 李대표는 대선후보로서 색깔이 분명치 않다.

문민정부의 기본정신인 민주화를 완성.구체화하자는 당의 기본방향이 훼손될 조짐이 보인다.

기본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총재와는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종호의원 =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변화와 개혁보다 안정에 바탕을 둔 개혁이다.

국민회의의 지상목표는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여당과 연합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다.

그걸 수수방관하면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덕룡의원 = 경선이후 64일을 허송세월했다.

위기상황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경선주자들의 비협조나 당의 분열화는 위기를 가속시킨 요인이지만 본질은 아니다.

당의 정체성이 변질되는 것같다는 우려가 있다.

당원의 총의를 묻지 않고, 공개토론도 없이 정체성을 변경해선 안된다.

대표에게 보고도 안된 것들이 몇사람에 의해 언론에 흘려지는 것은 큰 문제다.

대표도 확고한 중심을 잡고 당을 운영해야 한다.

▶권익현고문 = 국민들은 문민정부라는 단어에 식상해 하는 측면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권 재창출의 위기상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오세응 (吳世應) 국회부의장 = 이런 식으로 가면 김대중씨가 집권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국민의 60~70%가 김대중씨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큰 불행이 초래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온 주된 원인은 우리당에 있다.

李대표의 아들 병역면제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여러 지적이 있지만 경선참여자들중에도 문제는 있다.

▶李대표 = 역사 바로세우기는 김영삼 (金泳三) 정부의 철학으로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자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현정부의 그같은 철학을 짓밟고 갈 생각은 없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부정하겠다는 뜻은 없다.

정강.정책에 있는 '대통령중심제' 를 뺄 경우 내각제를 추진한다는등 정체성의 오해가 생길지 몰라 존치하도록 했다.

▶신상우의원 = 대표는 주변사람들을 재점검해야 한다.

실무자들에게 말조심시키고, 자료를 유출하도록 해선 안된다.

▶최병렬 (崔秉烈) 의원 = 전쟁이 시작됐는데 당헌.당규와 정강.정책 개정문제로 갑론을박해선 안된다.

당지도체제가 뭐가 중요하냐. 전쟁은 당총재와 대표.선거대책위원장이 중심이 돼 치르면 된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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