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UAE 실패서 배우는 무기 수출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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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 최근 한국 정부와 방위산업계는 부끄러운 좌절을 맛봐야 했다. 4년 넘게 추진해온 고등 훈련기 T-50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이 무산된 것이다. UAE는 한국우주항공이 개발한 T-50 대신 이탈리아의 M-346을 도입하겠다고 지난달 말 발표했었다. UAE는 M-346 48대를 10억 유로 (약 2조원)에 도입할 예정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과 2006년 차례로 UAE를 방문, 외교적 지원활동을 펼쳤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임기 5년을 회상하며 “(UAE 수출건은)아무래도 지금 우리가 제일 유리하다. 잘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UAE 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운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 직후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서한을 보내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고공 외교만 철석같이 믿고 ‘어쨌든 되겠거니…’하며 손을 놓은 게 실패를 자초한 셈이다. 1월 UAE를 방문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모하메드 왕세자는 “한국에 산업협력 프로젝트와 관련된 보고서를 요청했는데 몇 개월째 아무 응답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뒤늦게 난리가 벌어졌지만, 대세를 뒤집긴 역부족이었다. 보고서 하나 제대로 내지 않은 한국이, UAE 사막에 자동차 경기장까지 지어주겠다며 설득전에 나선 이탈리아에 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 이 대통령도 이번 호주와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적극적인 방위산업 세일즈에 나섰다.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는 이 대통령이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K-9 자주포의 성능을 높이 평가한다. 구매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며 한국이 요구해온 K-9 자주포 수입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인도네시아에선 한국 방위산업청과 인도네시아 국방부가 ‘전투기 공동개발 의향서’에 서명했다. 인도네시아의 주력 공군기 교체사업에 우리 기술을 수출할 길이 열린 것이다. 잠수함 사업 참여를 비롯한 각종 현안을 의식한 듯 이 대통령은 회담 중간중간 “남북이 대치한 상황이라 한국은 방위산업이 상당히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가 우리 방위산업의 가장 큰 수출시장 중 한 곳이라는 점에서도 분명 반길 일이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헤어지도록 짜여진 정상회담의 각본과, 계산상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등을 돌리는 국제정치의 현실이 항상 일치하긴 힘들다. 회담 테이블에서야 상대국 정상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기 힘들지만, 거액이 오가는 무기계약을 의리 때문에 밀어붙일 정상은 없다. 그럴듯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정교한 전략과 일 처리, 최후의 순간까지 방심않는 뒷심 등이 세일즈 성공의 요체인 것이다. 달러 한 푼이 아쉬운 지금, 이명박 정부가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자카르타에서 서승욱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