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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지펴 올린 따스한 가을밤…최명희 대하소설 독자 모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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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한가위 사흘 지난 달이 우면산 잔등 위로 떠올랐다.

만월이 아니라 사흘 만큼 이울었기에 애잔한 밝기. 별도 한 둘 씩 나타나기 시작한 지난 19일 오후7시 국립국악원 뒤뜰. 추석 지나 가을의 깊이로 들어가며 체온이 그리워지는 밤에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총회라는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 작품은 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와 동시대인들의 관심과 격려를 통해 더욱 큰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

특히 21세기 우리 민족문화예술의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에서 우선 좋은 작가와 작품을 키워내고 평가해내는 이러한 작업과 후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는 취지로 최명희씨 (50) 의 대하소설 '혼불' (전10권.한길사刊) 을 사랑하는 사회 각계 독자 1백여명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 '혼불' 에 감동 받은 이유 그 하나만으로 모인 이들은 인사말을 통해 제 각각의 감동을 주고 받았다.

강원룡목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이사장) 는 "최씨는 '혼불' 을 쓰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노벨문학상 수상작보다 훌륭한 이 작품을 세계에 널리 알려 그 상을 타도록 하게 하자" 고 했다.

최씨의 모교인 전북대 장명수총장은 "민족의 혼을 고양시킨 최씨를 오는 10월부터 전북대 초빙교수로 모시겠다" 고 밝혔으며 전라북도에서 4명이나 함께 올라온 관리들은 " '혼불' 의 무대가 되는 전북에 혼불의 거리, 최명희의 거리도 만들고 작품 곳곳에 나오는 전통의식도 발굴.보전해나갈 계획" 이라고 했다.

이어 국립국악원측이 베푼 축하공연도 감상했다.

한명회국립국악원 원장은 "국악의 메카인 이곳에서 우리의 얼.혼 찾기 행사가 열려 영광" 이라고 했다.

달밤 소를 탄 신선이 불어 만리 구름 밖으로 울려퍼지는 듯한 황규일씨의 대금독주. 그리고 안숙선 명창은 '혼불' 의 한대목을 작창 판소리로 들려주었다.

눈으로 읽어도 판소리 가락이 보이는 소설 '혼불' 이 소리의 임자를 만나 둥두렷한 가을 밤하늘을 민족의 원 (寃) 과 한 (恨) , 그리고 그것의 풀림으로 채워나갔다.

그리고 국립국악원 안무자 홍금산씨의 살풀이춤. 소설 '혼불' 이 17년간 붓 한자루에 기댄 고독한 영혼의 살풀이라면 살풀이춤은 하얀 천 한자락에 기댄 몸의 살풀이이다.

악기와 소리와 몸으로 각기 '혼불' 을 가을밤에 연출해 낸 공연을 본 최씨의 눈망울은 회한과 환희가 교차하고 있었다.

목소리도 촉촉히 젖어들고. "이 별맞이터에 모인 여러분들은 한분한분이 저 별같은 존재이다.

그런 분들이 남루한 실 한가닥인 나를 구슬목걸이 같이 알알이 꿰주어 고맙다.

실은 구슬 속에 숨어 있어야지 밖으로 나오면 구슬목걸이는 빛을 바랜다.

나는 이러한 실로서의 소명을 다하겠다.

" 17년간 부귀와 공명 다 끊어버리고 꼭꼭 숨어 완성시킨 '혼불' .그 '혼불' 이 독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잠재된 혼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일깨우며 이제 민족 공동체로서의 혼찾기로 요란스럽지않게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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