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 세로읽기]'경영' 필요한 문화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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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난 여름에, 한몫에 세건의 만화.애니메이션 국제페스티발이 열리더니 그 끝자락에 들자 부천판타스틱영화제.세계연극제.광주비엔날레.부산국제영화제 등 굵직한 문화예술 행사들이 또 동시다발적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겹치기로 열리는 문제에 대해 여러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문화의 과잉보다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사정을 고려해 볼 때 그런 행사들이 없는 것보다는 많이 열리는 것이 훨씬 좋다.

금강산과 식후경의 관계에 대한 속담의 의미가 보여주는 바, 우리 민족은 생래적으로 볼거리와 먹는 문제에 관한 한 대단히 열성적인 듯싶다.

그것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우리의 피 속에 흘러다니는지 무언가 볼거리가 생겼다 하면 평소의 취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아주 자발적으로 몰려다닌다.

꽃박람회에 몰려든 몇십만 인파를, 혹은 이집트문화전.폼페이전에의 연일 장사진 등을 보도하는 기사만이 아니라, 난해한 현대 설치미술 앞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촌로 (村老) 를 찍은 보도사진을 통해서도 우리는 '귀경거리' 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굶주림과 열기를 짐작케 한다.

이는 달리 말해 문화예술적 욕구는 높되 그것을 일상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 및 정책은 부재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의 볼거리에 대한 열기는 그것이 곧 중요한 문화상품임을 인식케 하고, 그래서인지 그것의 생산.유통.소비를 직접 조직하려는 소위 이벤트회사나 각종 공연기획사들이 나날이 창업되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언론사들은 문화사업국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고 근자에는 대규모 광고회사들마저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 이른바 이벤트사업은 아직 주먹구구식으로 수행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이벤트의 범위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각종 공연.전시.페스티벌의 조직.유통 문제는 국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인데도 불구하고,가령 한해의 전체 매출액조차 파악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하기야 영화에서도 1년 매출액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하다못해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 (役事) 라는 고속전철 사업도 주먹구구식인 바에야 이벤트사업이라고 해서 그런 현실을 비켜갈 리 있겠는가.

아무려나, 그건 그렇다 치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

문화향수 (享受) 욕구는 더욱 증대되고 그에 따라 이벤트 시장규모도 더욱 확대되는 마당에 더 이상 구태를 반복해서는 곤란하다.

우선의 해결방법은 문화예술의 경영.행정.정책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다.

하지만 이것을 가르치는 대학은 없다.

있다 해도 몇몇 특수대학원에서, 그것도 대단히 성긴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예술에 있어 경영과 정책의 문제가 단지 이벤트사업의 필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수준을 높이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래서 그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중대한 과제인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문화예술 행사는 여전히 낙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벤트사업의 문제점은 우리에게 현대적 문화예술 경영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바로미터인 셈이다.

이성욱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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