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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의 힘, 노벨상 수상자 연쇄 인터뷰<1> 마스카와 도시히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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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호 04면

마스카와 교수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과 기발한 발상으로도 유명하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자신의 사인에 대한 유래를 칠판에 써 가며 한참 설명했다. 자신의 이름 T masukawa의 ‘masu(마스)’가 일본어 발음으로 하면 ‘곡물 분량을 헤아리는 데 쓰이는 사각형 모양의 나무그릇’인 데 착안해 그 모양새로 흘려 썼다고 말했다. 교토=김현기 특파원

마스카와 교수의 이야기는 거침없었다. 중간에 말을 끊지 않으면 한 가지 질문에 30분, 한 시간이고 얘기할 기세였다. 과학자의 열정이 그대로 배어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언급하는 대목에선 1분가량 흐느끼면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책장 가득 책과 자료가 쌓인 연구실엔 나고야대 시절 스승인 사카타 쇼이치((坂田昌一·1911∼70)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에게 그는 “한국 과학자들이 세계 으뜸으로 비상하는 날이 곧 다가오도록 기원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명문대 매달리는 건 교육열 아닌 교육결과열”

-과학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충고를 한다면.
“스스로 몰두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그리고 중간에 타협하지 말고 끈질기게 추구해 나가야 한다. 나는 ‘안고수저(眼高手低)’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원래 뜻은 ‘비평은 잘하지만 실제 시켜 보니 실력은 별로’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멋대로 재해석하는 뜻은 ‘목표는 높이 두되 착실히 다질 수 있는 부분부터 하라’는 것이다.

목표를 높이 두지 않고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고집하면 평생 지나 봐야 똑같다. ‘내 지향점은 여기다, 이걸 하고 싶다’는 확고하고 높은 목표를 세워놓고, 어디서 시작해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목표에 접근해 간다는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선택했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주저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길을 가는 데 120%의 노력을 쏟더라도 즐겁기만 하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한국에선 수년 전부터 ‘이공계 기피’ 현상이 두드러진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분위기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미국 사회도 그렇지 않았는가. 멋지게 살고, 멋지게 벌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공계는 뭔가 촌스럽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즉, 일종의 문화적 배경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역시 근본은 사물을 규명하고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의미가 없다’는 가치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또 하나, 이공계 기피 현상이니, 학생들의 사고력 저하니 얘기하지만 내가 볼 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입시제도만 봐도 ‘빈칸 채우기’나 ‘4지선다’ 문제가 대부분 아니냐. 모두 (입시)문제 작성이나 채점의 간소화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 (초·중·고교에서도) 학생들에게도 ‘본 적이 없는 문제는 시간이 아까우니 아예 그냥 넘어가라’고 가르친다. 한마디로 ‘생각하지 말도록’ 만드는 교육이다.”

-교육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결국 가치관이다. ‘과학이라는 건 원래 재미있는 것’이라는 캠페인 같은 게 필요할지 모른다. 가깝고 쉬운 방법부터 찾는다면 이제라도 아이들 곁에 책을 놓아 주라고 권하고 싶다. 과학책뿐만 아니라 위인전 같은 것도 좋다. 책을 통해 존경하는 사람들, 동경하는 대상들을 발견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걸 읽어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어떻게 키워 주느냐보다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에만 관심 있는, 진정한 ‘교육열’이 아닌 ‘교육결과열’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별로 참고가 안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웃음).”

-노벨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앞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넘어서는 걸 노리고 있다’고 했는데.
“요즘은 재미있는 걸 발견하면 전 세계 인간들이 다 몰려든다. (어떤 연구 과제를) 동시에 발상한다면 3명이 같이하는 곳(연구기관)이 1명이 하는 곳에 99.9% 이긴다. 논문도 2주일 뒤지면 그걸로 끝이다. 인터넷을 통해 곧장 서버로 보내져 전 세계 관련자가 다 보게 되고, 2주일 후에 그걸 올리면 모두 ‘앞의 것을 훔쳤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자들의 밀도가 어느 정도 높지 않으면 소립자 연구 같은 건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맞으면 대박이고 안 맞아도 그만이고, (연구자) 밀도가 떨어지는 (분야에서) 아인슈타인을 앞서는 걸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거리의 기원이라는 개념인가.
“아인슈타인은 거리에 대한 물리라 할까, 공간을 늘리거나 줄임으로써 중력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것이냐 찾자는 거다. 어떤 구조가 돼 있을 때 거리라는 개념이 나오는지 연구해 보려 한다. ‘초(超)대칭성’이라는 것인데, 새로운 자유도가 공간에 추가되는 것이다. 5차원, 6차원이 아니라 공간에서 사용되는 우리들의 좌표와 전혀 다른, 실수(實數)가 아닌 새로운 좌표 축이 추가되는 것이다. 일종의 혁명적 이론인데, 이게 나오면 상대성이론의 다음 단계가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젊었을 때 이미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엔 ‘이런 거 생각하고 있다간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걱정돼 그만두었다. 최근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연구를 계속하는 동기와 좌우명이 있다면.
“내게 동기부여가 되는 건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대로 해 줄 수 있게 하는 환경이다. 맘대로 뭘 해도 혼나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나아가 속박되지 않은 비평과 가치관이다. 연구생활의 좌우명이 있다면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한 달 동안 하루 3시간씩 자면서 같은 걸 생각한 적도 있다. 노벨상을 받은 연구도 불과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생각해 나온 결과물이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텐데 그걸 푸는 삶의 즐거움은 뭔가.
“독서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다. 2002년 교토 인근 숲 속에 조그만 통나무 집을 하나 구했는데, 그곳이 최고의 행복을 안겨주는 곳이다. 당초 집 안에 더 이상 책을 놔둘 곳이 없어 책을 옮겨 두려 구했는데 그곳에서 장작나무의 불꽃이 튀는 걸 보면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사색에 잠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어릴 적에 뭔가 다른 이들과 비교해 독특한 점이 있었나. 혹은 특별한 가정교육이 있었나.
“초등학교 시절 설탕가게를 하던 부친은 한때 전기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전기에 대한 지식을 내게 자주 들려주곤 했다. 그래서 학교 공부는 잘 못했지만 별난 것을 많이 알고 있었다. 학교에선 ‘성적은 나쁘지만 별난 걸 많이 아는 친구’로 불리곤 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집 안에 과학 잡지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부모님은 내게 그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그냥 손 닿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 책들을 읽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난 이과가 맞는 거 같다’ ‘난 수학이 좋은 거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고교 1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내가 살던 곳의 나고야대 사카타 쇼이치 교수가 소립자에 대한 ‘사카타 모델’을 발표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과학은 먼 세계, 미국이나 유럽 같은 데서 이뤄지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내가 사는 이 마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데 큰 감동을 받았다. 나도 그 작업에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해 나고야대를 지망한 것이다.”

-미국과 아시아 국가 사이에 기초과학의 연구 수준 격차가 크다고 보나.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연구자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층이 두텁고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은 반드시 여러 나라로 확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도 나름대로 과학의 힘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아시아 국가들의 사회 안정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가 안정되면 문화 수준도 높아지고 자연스레 과학 수준도 높아진다. 과학이라는 건 축적이다.”

-요즘 기초과학보다 ‘돈’이 되는 응용과학 쪽에만 관심이 쏠린다고 하는데.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기초과학에) 흥미만 있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어느 정도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본다. 어찌 보면 그것이 바로 한 사회가 갖는 문화 수준이다.”

-노벨상 시상식 때 영어 대신 일본어로 연설한 것이나 시상식 참석을 위해 처음 여권을 만들었다거나, 영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따라붙는데.
“연구자로서 의사소통을 하려면 영어가 필수적이다. 앞으로 20년가량 지나 자동통역기가 나와 아무런 불편 없이 의사소통이 된다면 영어가 필요 없게 되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과학을 못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걸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난 연말 시상식 후 회견에서 “메달은 어딘가 구멍이라도 파서 묻어두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랬나.
“적당한 곳에 그냥 놔두었다. 금 10t이 넘는 것도 아닌데 메달에 별 가치가 있는 건 아니지 않으냐. 난 그런 물건엔 별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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