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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하버드계획' - '솔로몬 작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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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92년부터 미 국제개발국 (AID) 주도아래 시작된 하버드 프로젝트는 하버드대 '국제개발연구소 (HIID)' 와 러시아의 '법에 기초한 경제연구소 (ILBE)' 가 공동으로 러시아의 국영기업 민영화작업 등 옛 소련의 법과 기업을 새로운 시대에 맞도록 조정하기 위한 계획이다.

냉전을 주도한 양국이 함께 힘을 모아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데 시금석이 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가 추진 5년만에 존폐를 거론할 만큼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AID가 모스크바에 파견돼 있던 프로젝트 실무책임자인 안드레이 슬레이퍼 (경제학) 와 법률 전문가 조너선 헤이등을 직권 남용과 기금 불법사용 혐의로 조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사회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로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와 경제의 유착 (癒着) , 국가의 미래보다 개인의 치부를 우선시한 권력층과 겹겹으로 형성된 부패의 먹이사슬, 그리고 이에 대한 감시.감독이 부재한데 기인한다.

특히 추바이스 제1부총리가 속해 있는 청년개혁파 (MR) 와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로 대표되는 비MR파는 그동안 세계최대 니켈 생산업체인 노릴스크사 매각문제등 각종 이권사업에서 사사건건 개입과 대립을 거듭하며 국력을 소진시켜 왔다.

권력층이나 국민들 모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했을 뿐만 아니라 내부분열과 이로 인한 개혁 추진력의 상실로 야기된 하버드 프로젝트의 위기는 사회주의국가의 경제구조를 시장질서에 맞게 전환시키는 작업이 무척 힘들 뿐더러 아무리 큰 나라라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긴채 내부 분열로 역량을 소진한다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좋은 대비가 되는 것이 '솔로몬 작전' 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자국문제 해결정책이다.

솔로몬 작전은 지난 80년대 중반 이스라엘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거주하고 있던 1만5천명의 자국 교포들을 단 사흘만에 이스라엘로 공수 (空輸) 해온 작전을 말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90년대에도 옛 소련으로부터 20만명의 유대인 이민자들을 흡수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단 6백만명에 불과하고 국토가 한반도의 10분의1에 지나지 않은 작은 나라다.

그러나 남녀 모두 군 복무를 하는등 평시에도 전시와 같은 정신상태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국민, 일관된 정책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입증해 보인 정부의 노력이 서로 조화를 이뤄 주권 수호는 물론 수억의 아랍인들 사이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다.

이같은 이스라엘의 사례는 아무리 나라가 작고 사방에 위험요소가 산재해 있다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이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책임지고 한 방향으로 국력을 결집시켜 나간다면 상상을 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어떤 형식으로든 한반도에 큰 변화가 올 것이 자명하다.

특히 북한 주민의 대규모 탈북 (脫北) 과 이에 따른 주민 수용문제, 북한경제를 시장질서에 맞게 재편하는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면 한반도문제에 이해 관계를 가진 국가들과 다자 (多者) 내지 지역기구는 한국의 분명한 입장표명을 요구할 것이다.

만약 그때 우리가 책임있는 입장과 역할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다면 우리의 희망사항이 최대한 반영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다시 한번 열강의 흥정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내부적인 단합을 바탕으로 역량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10여년 동안 작은 성과에 도취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나가야 할 목표와 방향을 상실한 채 각자가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방기 (放棄)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이제부터라도 선거정국의 와중에서 흩어져 가는 국력을 재결집하고 대북문제를 포함한 한반도문제에 대해 우리의 명확한 원칙과 입장을 일관되게 밝히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치열한 국제경쟁의 와중에서 주권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노경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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