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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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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올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 빈민가에서 성장한 청년 자말이 100만 달러가 걸린 퀴즈쇼에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명 배우라곤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이 영화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의 작품상을 휩쓸면서 일약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실제 빈민가 출신인 아역 배우 아자르 무하마드 이스마일(10)과 루비아나 알리(9)는 오스카 시상식장에도 등장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전 세계의 관심이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스마일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아들이 “피곤해 인터뷰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투정하자 보도진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때려 쓰러뜨렸다. 인도 정부는 이들에게 살 집을 주고, 제작진은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에 대비해 신탁기금을 마련했지만 부모들은 “지금 당장 돈을 달라”며 항의하고 있다.

어린 스타들과 돈에 눈먼 부모들의 문제는 할리우드 최초의 스타 아역 배우가 출현했을 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영화 ‘키드’(1921년)에서 찰리 채플린과 공연, 7세의 나이로 스타덤에 오른 재키 쿠건은 21세가 되자 그가 번 400만 달러를 탕진했다며 어머니와 계부를 고소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 쿠건이 되찾은 것은 12만 달러뿐이었다.

이 사건으로 아역 배우의 재산 보호에 대한 논쟁이 일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미성년 배우가 벌어들인 돈 중 최소 15%는 성년이 될 때까지 제3자가 신탁 관리해야 한다는 법규를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금도 ‘재키 쿠건 법’이라고 불린다. 이 법은 재산뿐만 아니라 교육과 촬영 시간 등 미성년 배우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루 9시간30분 이상 촬영장에 머물 수 없었고, 그중 3시간은 영화사가 고용한 교사와 함께 공부를 해야 했다.

불행히도 한국의 경우 아역 스타들을 위한 보호 장치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연기나 노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의 교육은 방임 상태에 놓인다. 한국의 미성년 연예인에게 가장 큰 위험은 부모의 탐욕보다 ‘어른 대접’의 유혹이다. 최근 왕년의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소년 노마 역을 맡았던 아역 배우가 한의사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보다 유명했던 금동이 역의 아역 배우는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10대 스타들의 성공이 각광받으면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는 부모와 아이들로 연예 관련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지금, 재키 쿠건 법의 취지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져야 할 때다.

송원섭 JES 엔터테인먼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