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 읽기] ‘혼자 치는 볼링’으로 비춰 본 골병 든 미국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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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나 홀로 볼링
로버트 D 퍼트남 지음, 정승현 옮김
페이퍼로드, 720쪽, 3만8000원

 이토록 일상적이고, 가벼운 소재를 이만큼 사려 깊게 펼쳐 보이다니…. 탄성과 함께 읽은 저작이다. 미국에서 첫 선 보였을 때 언론들이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등 고전에 비견할만하다고 치켜세웠다는데, 그게 맞다. 기꺼이 한 표를 던지려 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치사회학 분야. 미국사회 변동에 국한된 주제, 매우 치밀한 내용 때문에 대중성은 덜하겠지만, 고급 독자에겐 ‘왕건이’가 분명하다. 국내 학계에 주는 암시도 크다. 시종 거대담론의 주제에 매달리지만 디테일과 맛은 떨어지는 허장성세의 연구 풍토에 대한 정문일침 한 방이다.

내용은 이렇다. “미국 사회는 지금 차가운 사회로 변질되고, 개인들은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사회해체가 진행 중인가?” 저자는 그걸 묻는다. 계기는 미국인들이 즐기는 레포츠 볼링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 홀로 볼링 인구’가 부쩍 늘었다. 동네 동호인끼리 팀을 만들어 즐기면서 리그전도 벌이던 정겨운 리그 볼링의 숫자가 10여 년 새 곤두박질친 것이다.

2~3년 새 리그 볼링 자체가 멸종될 위기란다. 혹시 볼링 동호인 숫자가 줄었을까? 아니다. 되레 늘었다. 볼링만 그런 게 아니었다. 재향군인회 등 활동도 고사 위기이고, 학교 사친회도 영 썰렁하다. 주일 교회 참석, 노조 가입, 지자체의 공직 출마, 지역사회 간부 활동 모두가 확 줄었다. 중간 결론은 짐작대로다.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어주던 ‘사회적 자본’과 지역 공동체가 공동화되면서 파편화된 개인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의 종언』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낡았다. 그는 오래 전 미국 시민은 이념 따위 보다는 여가활동과 지역사회 운동으로 바쁘다고 주장했는데, 옛날 얘기다. 즉 미국은 속으로 골병 들었다는 책임 있는 ‘사회 의사’의 경고음이다.

미국에서 이 책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통계가 잘못됐다느니 뭐니 하는 지적도 나왔지만, 아직은 퍼트남에 대한 공감이 큰 모양이다. 책 뒷부분 남북전쟁 이후 미국사회 변동에 대한 분석도 풍속사·일상사로도 탁월하다.

사족 1. 책 줄거리를 이렇게 소개하면 빤한 내용 아닌가 싶겠지만, 그게 안 그렇다. 읽어봐야 맛을 안다. 영화 스토리를 너무 많이 알면 막상 영화관에서는 조는 법인데, 그게 걱정돼 이쯤에서 입술을 깨문다. 사족 2. 이 책은 미국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에 주는 암시도 크다. 미국이 ‘해체되는 차가운 천국’이라면 우리는 ‘후끈하고 즐거운 지옥’이다. 이 책은 우리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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